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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문화재행정의 요체는 빗금을 없애고 선을 긋는 일이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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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8년 전 오늘인 2012년 12월 9일, 나는 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앞 사진을 게재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종래의 문화재 발굴현장에서 보이는 경고문입니다. 지금도 이런 식의 협박 경고문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 바꿔야 합니다. 

"개 조심...물려도 책임 안짐" 이런 식의 경고문이 가뜩이나 걸림돌 취급받는 문화재에 더 해악을 끼칩니다.


아마 이 경고판은 그 무렵 내가 함안 성산산성 발굴현장 취재를 갔을 적에 찍어둔 것이려니와, 이 무렵 나는 저와 같은 문화재보호구역이라든가 발굴현장 등지에 세워놓은 각종 안내판에 보이는 위압적인 문구들에 대한 문제를 집중 지적했거니와, 이를 계기로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저와 같은 협박성 문구를 더는 적지 말라는 공문까지 현장에 내려보낸 것으로 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저와 같은 협박성 경고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자최를 감추었다고 나는 본다. 


그건 그렇고 저 경고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시간이 흘러 저와 같은 금지를 규정한 법률이 요새도 저 문항에 남았는지, 아니면 문화재보호법에서 분파한 매장법 등지로 분산 배치되었는지는 지금 이 순간 확인은 하지 못하겠지만, 저 경고문이 말하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는 일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는 점에서, 저 경고판이 말하는 금지 행위와 실제 현장에서의 효용성 문제간 괴리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현상임을 다시금 말하고자 한다. 


함안 성산산성은 저에서 말하듯이 국가 사적 제67호이거니와, 이런 사적 지정구역은 지정구역과 그 지정구역을 보호하기 위한 주변 일정한 구간에 대해서도 그 현상을 변경하는 행위 일체에 대해서는 엄격히 금지하거나, 각종 규제를 한다. 이 규제가 시행되는 구역을 문화재보호구역이라 하거니와, 영어로는 흔히 buffer zone이라 한다. 버퍼존을 두는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해당 문화재의 경관 보호를 위함이거니와, 성산산성 역시 성벽일 돌아가는 구간과 그 안쪽은 물론이려니와 그 지정구역을 중심으로 일정한 구간에 대해서는 보호구역을 설정한다. 


이 보호구역이 지금은 어찌되는지 자세한 사정을 확인치 못했지만, 최대 지정구역을 중심으로 500미터 이내 범위까지를 구역으로 설정하되, 광역자치단체장이 그 500미터 안에서 조례를 통해 해당 범위를 설정토록 했던 것으로 안다. 대략 보니, 100미터가 많더라.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아무래도 그 범위가 농어촌 지역보다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데 문제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지정구역이고, 또 그에서 어디까지가 구체적으로 버퍼존인지를 좀체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여기가 지정구역이요, 또 다시 여기까지가 보호구역이라 해서 휴전선마냥 철조망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에 직면한 문화재청에서는 요새 저 범위를 세세하게 표시한 지도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알지만, 그것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여타 행정이 그런 것처럼 문화재 행정 역시 요체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탈피'가 투명화의 요체다. 대략 이곳 어드메가 문화재 지정구역이요 혹은 보호구역? 이 따위로는 행정이 성립할 수가 없다. 니미럴, 그런 범위가 관념으로만, 혹은 빗금이 대표하는 '막연'으로만 존재한다면, 통치 혹은 행정이 되겠느냔 말이다. 


세계유산 역시 이 문제가 심각하다. 세계유산 세계유산이라 하는데, 그 등재구역과 그 보호완충구역이 관념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요, 더더구나 문화재청과 행정당국 문서상으로만 존재해서도 아니 된다. 이번에도 '한국의 전통산사' 7군데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거니와, 등재신청서에는 분명히 그 완충구역까지 표시가 되어 있는데, 정작 우리 행정당국에서 그에 대한 정보를 어떤 식으로 제공하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 듣자니 토지이용계획원인가 하는 그런 서류에는 대략 다 정보가 구축된 것으로 안다. 


해당 문화재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정구역과 그 보호구역에 대한 경계범위가 세세한 지도로, 더구나 선으로 확실히 표시되어야 한다. 더구나 그런 자료가 언제 어디서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선 이 자리가 문화재지정구역인지 보호구역인지 알아야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며, 무슨 일이라도 애초에 기획조차 할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서는 내가 이곳에다 이런 공사를 하려 하는데 하고는 그 문서 들고 지자체 문화재청 찾아갔다가 "어? 여긴 보호구역이라 안 되는데요?" 하는 식으로 빠꾸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지금은 그런 사정이 많이 변해서, 그것이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고 알지만, 그 장족의 발전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불과 그 구축 역사가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지정구역과 보호구역이 상세하게, 더구나 그 경계가 빗금이 아니라, 확실한 실선으로 표시하는 일이야말로 문화재 행정의 시금석이요 요체이며, 출발이다. 빗금을 없애고 선으로 긋기 시작한 시점이 불과 10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가 분통을 터뜨린다. 


종래의 대강대강주의가 실은 우리 문화재 현장, 그것도 세계유산 현장에서 개망신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서남해한 갯벌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면서, 유네스코에다가 그 신청서를 냈는데, 실로 쪽팔리게도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으니, 그 이유가 참말로 기가 차서 산천초목이 웃는다. 뭐였는 줄 아는가? 등재구역과 그 보호구역이 지도로, 상세지도로 범위가 표시되지 않았다 해서, 아예 문서를 접수조차 못하고 말았다. 도대체 어찌해서 이런 처참한 꼴이 벌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이 꼬라지가 현재 한국 문화재 행정의 처참한 현실이다.  대강대강주의가 빚은 한국문화재행정의 참사다. 


내가 문화재청이라든가 함안군을 통해 성산산성 클릭하면, 저런 경계 범위를 1m 단위, 혹은 그 하위 단위까지 들여다 보게끔 하는 그런 자료 구축했는가? 했다면, 그 서비스 어떻게 하는가? 내가 요구하는 수준은 그 이상이다. 물론 이것이 비단 문화재 행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내가 참고삼아 문화재청에서 성산산성을 검색해 봤다. 다른 데 있는지는 몰라도, 그리고 내 검색 능력의 부족 때문인지 몰라도, 그 지정구역과 보호구역 지도가 안 보인다. 문화재 정보에서 그 상세한 경계 구역 포함한 지도 제공은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2_1_0&ccbaCpno=1333800670000#


우리의 문화재행정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그것과 비교하려고 그 첫번째 것을 제시한다. 비교해 보면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https://whc.unesco.org/en/list/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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