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4년 전 꼭 오늘, 2020년 1월 24일 우리 THE HERITAGE TRIBUNE가 소개한 적이 있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이른바 초두鐎斗 라는 유물이라. (맨아래 첨부 기사 참조)
일명 조두刁斗라고도 한다는 이 유물을 내가 볼 때마다 한국고고학이 설명하는 그 초두 맞는지를 매양 의심한다 했거니와
간단히 말해 저 생긴 양태를 보면 누가 봐도 조리도구 요리도구다.
물론 조리도구 요리도구를 임금 거둥이나 군대에서의 행진에서 무엇인가 신호를 보내기 위한 용도로 전용할 수는 있겠지만, 언제나 나는 저것이 과연 무슨 소리를 낼 만큼 악기 기능도 겸했는가를 의심했다.
저건 누가 봐도 휴대용 조리도구다.
그런 점에서 얼마전에 우리가 소개한 적이 있는 거란 벽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 장면이 그것인데, 언뜻 아니 고려거란전쟁에서 익숙한 소배압이 왜 거기서 나와? 하겠지만, 실제 거란 남자들 패션 감각이 저랬다.
저런 모습에 중국 중심 동아시아 전통에 익숙한 문화권에서는 저런 야만이 있나 했겠지만, 우리가 정작 이 장면에서 유의해야 할 대목은
재료는 청동 혹은 쇠였을 저 세발솥이라는 사실이다.
저 세발솥은 앞서 든 초두 혹은 조두와는 약간 양태가 다르기는 하거니와, 무엇보다 초두 혹은 조두가 몸통에서 길게 난 자를 잡은데 견주어 이 거란 세발솥은 뚜껑 위에 달린 자루를 잡고서 움직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그 기능이 다를 수 있겠는가?
저 세발솥을 든 사람이 분명 국자를 들었으니, 저 기능은 말할 것도 없이 조리도구요, 더 구체로는 국자로 보아 저 안에서는 국이나 수프 등을 끓였다.
더 중요한 점은 초두건 저 세발솥이건 같은 휴대용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네 가마솥과 대비할 때, 저 세발솥이 지닌 강점은 바로 저 휴대성에 있는 것이다.
거란이 저런 휴대솥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그네들이 유목 특징이 농후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꼭 유목이 아니라 해도 저와 같은 휴대용 솥은 군대 징발 같은 데서 집중으로 사용한다.
전기밥통인 셈인데, 전기밥통이 구동에 전기가 필요하듯이 저 역시 조리에는 당연히 불이 필요했다.
저 거란 벽화에서는 저걸 어떻게 해서 불을 땠는지가 보이지 아니하나, 밑에다가 화로 같은 걸 대서 했다.
내가 볼 때 저 거란 벽화는 우리가 품을 만한 무수한 의문들을 푸는 열쇄다. 판도라상자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
초두에서 내가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지만, 나는 저에다가 무엇을 끓였을까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김치찌게? 된장찌게?
풍납토성 출토 한성백제 이른바 초두는 종묘 제사 같은 제의에 사용할 국을 끓였다는 데 내심 의문이 가지마는, 그렇다고 꼭 그렇게 한정해야 할까 하는 의문도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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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초두鐎斗 사용 일례一例
줄줄이 유물 이야기-초두鐎斗, 너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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