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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신론 讀史新論

결혼은 해가 진 밤에 했다



남송시대 사람 우무尤袤(1127?~1194?)가 엮은 《전당시화全唐詩話》 권 제1 ‘고종高宗’에 보이는 한 대목이다. 


太平公主,武后所生,后愛之傾諸女。帝擇薛紹尚之。假萬年縣為婚館,門隘不能容翟車,有司毀垣以入。自興安門設燎相屬,道樾為枯。當時群臣劉禕之詩云:〔夢一作蔓。梓光青陛,穠桃藹紫宮。〕元萬頃云:〔離元應春夕,帝子降秋期。〕任希古云:〔帝子升青陛,王姬降紫宸。〕郭正一云:〔桂宮初服冕,蘭掖早生笄。〕皆納妃出降之意也。


태평공주太平公主는 무측천武則天 소생으로, 황후의 그에 대한 사랑이 다른 딸을 압도했다. 황제가 설소薛紹를 사위로 골라 시집을 보냈다. 만년현萬年縣을 골라서 혼관婚館으로 삼았으니, 문이 좁아 적거翟車가 지날 수 없어 담당 관청[유사有司]에서는 담장을 헐어 들어가게 했다. (황후가 행차하는) 흥안문興安門에서부터 (만년현까지) 횃불을 연이어 놓으니 가로수가 말라버렸다. (下略)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를 상술한다. 




만년현萬年縣은 당대唐代 수도 장안을 보위하는 중앙 현의 하나로서 이른바 경기京畿에 속한다. 


혼관婚館이라 함은 요샛말로 예식장을 말한다. 한데 그 넓은 만년현 전체를 예식장으로 삼을 수는 없으니 예서 만년현이란 만년현 전체를 통치하는 관청이 있던 곳을 말한다. 만년현을 예식장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혹여 태평공주 남편으로 점지한 설소薛紹가 사는 곳이 만년현이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 결혼식에 신부 엄마인 무측천이 친림親臨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황후가 타는 수레가 너무 커서, 혹은 만년현 청사 문이 너무 좁고 낮아 그것이 통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고민하다 담장을 헐어버린 것이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는 담장을 다시 메웠을 것이다. 


황후가 타는 수레를 예서는 적거翟車라 했으니, 《송사宋史》 권 제150 지志 제103 여복輿服 2에 이르기를 


“皇后之車,唐制六等:一曰重翟,二曰厭翟,三曰翟車,四曰安車,五曰四望車,六曰金根車”


“황후가 타는 수레는 당나라 제도에 의하면 6가지 등급이 있다. 첫째를 중적重翟이라 하고 둘째를 압적厭翟이라 하며 셋째를 翟車라 하고 넷째를 안거安車,다섯째를 사망거四望車,여섯째를 金根車라 한다”


라 했으니 황후가 타는 수레 중 하나였음을 안다. 




흥안문興安門은 당대唐代 황궁인 대명궁大明宮에 난 문의 하나로 건복문建福門과 인접했다.


이로써 보건대 무즉천은 흥안문을 통해 대명궁을 나선 뒤에 적거라는 수레를 타고서 예식장인 만년현 관사로 행차했음을 알 수 있다.


도월道樾이란 도로 양편에 심은 가로수를 말한다. 樾(월)에 대해 《당운唐韻》과 《집운集韻》에서는 王(왕)과 伐(벌)의 반절이라 하고, 《집운韻會》과 《정운正韻》에서는 魚(어)와 厥(궐)의 반절로, 音음은 越(월)이라 했으니 ‘월’이라 읽으면 된다. 《옥편玉篇》에서는 초楚 지방에서 두 나무가 교차해서 드리운 아래를 월樾이라 한다고 했으니, 이에서 바로 가로수라는 의미가 파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혼례를 치르는 날 가로수가 말랐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혼인을 의미하는 婚은 그 본래 글자가 昏이라, 나중에 시집 혹은 결혼이라는 의미를 강화하고자 계집 녀자를 붙여서 요새 저리 쓰는 일이 흔하니, 이는 文과 紋의 관계와 같다.  文은 본래 무늬 디자인 패턴을 의미하다가 나중에 문자라는 의미로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이자, 그 본래 의미를 더욱 강화하자는 뜻에서 실 사[糸] 변을 붙여서 紋이라는 글자를 새로 만들었다. 


이 글자는 요새도 황혼黃昏이라는 합성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해가 뜨기 전, 혹은 해가 진후 어둑어욱한 시간을 말한다. 다시 말해 혼인은 밤에 했다. 밤에 결혼했으므로 그에 참석하고자 황후가 행차할 때 가로수 양쪽에다가 횃불을 설치했으니 그래서 그 불에 가로수들이 말라버렸다는 뜻이다.


한편 《전당시화》의 “太平公主,武后所生,后愛之傾諸女。帝擇薛紹尚之。假萬年縣為婚館,門隘不能容翟車,有司毀垣以入。自興安門設燎相屬,道樾為枯”라는 이 대목은 《신당서新唐書》 권83 열전列傳 제8 제공공주諸帝公主에도 그대로 보인다. (January 14, 2014) 




*** 


문제는 혼인을 해가 지고 난 다음인가 아니면 해가 뜨기 전 새벽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하거니와, 해가 지고 난 저녁을 말한다. 그것은 각종 예서禮書에서도 보이고, 무엇보다 각종 자전에서도 그리 설명한다는 데서 엿보거니와, 예컨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昏’이라는 글자를 


日冥也。从日氐省。氐者,下也。


라 풀었으니, 이는 “해가 어둑어욱한 것이다. 日과 氐의 회의문자다(氐는 氏로 축약했다). 氐(저)란 진다는 뜻이다”는 의미 정도다. 이에서 보듯이 昏이라는 글자는 日이 하락下落한 상태를 말한다. 




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해설한 단옥재段玉裁는 그 필생의 역작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에서 이 글자를 해설하기를 


日冥也。冥者、窈也。窈者、深遠也。鄭目錄云。士娶妻之禮。以昏爲期。因以名焉。必以昏者、陽往而陰來。日入三商爲昏。引伸爲凡闇之偁。


해가 어둑어둑한 것이다. 冥(명)이란 窈(요)이니 심원深遠하다는 뜻이다. 정현鄭玄의 《목록目錄》에서 이르기를 “남자가 마누라를 맞아들이는 법식은 昏으로써 시기를 삼는다. 그런 까닭에 (혼인을) 저렇게[昏]에 부른다. 모름지기 황혼에 하는 이유는 양기[陽]가 가고 음기[陰]가 오기 때문이다. 해가 삼상三商에 든 때가 昏이다. 인신引伸해서 모든 어둑어둑함[闇)의 명칭으로 삼는다. 



이에서도 양기가 가고 음기가 도래하는 시점을 지적했으니, 해가 지고 난 저녁을 말함이 더욱 분명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