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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신론 讀史新論

법금法禁과 국민, 국민국가

《김태식의 독사일기 》 2. 法禁


인류 문화사는 국민國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 추상명사이자 집합명사인 국민이 주권자인 국가를 국민국가 nation state라 한다. 이 국민,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국민국가가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서구에선 논란이 적지 않은 줄로 안다. 한데 이 국민과 국민국가의 분기점이 그 이전 시대와 명확히 갈라지는 곳으로 동아시아 문화권 만한 데가 없다.


동아시아 전근대 법률法律 혹은 그에 버금 가는 각종 예제禮制를 본 적이 있는가? 그 어디에도 개인을 말하지 않았으며 그 어디에도 그들의 권리를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계급의 일부였고 공동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나 집합명사였고 언제나 추상명사였다.


그런 계급 그런 공동체의 규범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강박과 윽박만이 존재했을 뿐이며 그것이 곧 법法이요 예禮이며 률律이며 령令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를 법금法禁이라 한다. 금지사항을 법으로 규정한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법으로 정한 금지사항이란 뜻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개인의 권리를 말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경우에도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만 나열했을 뿐이다. 기자가 조선에 도망쳐서 만들었다는 법률 조항 8개가 모조리 금지 조항이었으며 한 제국을 창설하는 과정에서 유방이 내세운 세가지 조항도 모조리 법금이었다.


전근대 동아시아 그 어디에도 개인도 없었고 더구나 그들의 권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오직 의무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 어떤 법률도 국민의 탄생 이후 등장하는 권리를 규정하지 않았다. 


이런 동아시아 사회가 어느날 느닷없이, 각중에 국민을 만나게 되니, 이때서야 비로소 '나' 혹은 '우리'라는 주체를 발견하고 그리하여 이를 토대로 비로소 내가 공동체를 향해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유교가 인본주의? 백성을 근간으로 알았기에 휴머니즘이라는 말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온갖 금지의 사슬일 뿐이다. 유교윤리 그 어디에도 권리는 없었다. (January 13, 2016 at 6: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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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전근대 어디에도 개인의 권리는 없었다. 의무에 병행해 권리로 무장한 일군의 추상명사 집합명사가 비로소 탄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국민이었다. 


이 국민을 양계초는 새로운 백성이라는 뜻에서 신민新民이라 불렀다. 양계초의 新民說은 새로운 국민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종래 권리는 없고 의무만 부가된 피통치민을 신민臣民이라 불렀으니, 이 臣民을 쓸어버리고 新民으로 구축하고자 그 자신 의사가 되어 환부를 도려내겠다고 한 이가 줄을 이어 나타났는데, 의사 출신 노신도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