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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신론 讀史新論

비를 오게 하려거든 무당을 불태우라

굿하는 무당. 가뭄이 극심할 때 이런 무당들을 뙤약볕에 장시간 내어놓아 비를 기원했다. 

 

《김태식의 讀史日記 》 (2) 폭무暴巫와 천견天譴

《고려사절요》 제24권 충숙왕(忠肅王) 기사己巳 16년(원 천력天曆 2년. 1329) 여름 5월조에 이런 말이 보인다.

聚巫,禱雨六日,巫苦之,皆逃匿,搜捕者遍閭巷。史臣白文寶曰 : 燮理陰陽,宰相職也,旱氣太甚,尤當敬畏,以答天譴,曾是不思,而徒責雨於巫覡,豈不謬哉。

무당들을 모아 6일간이나 기우제(祈雨祭)를 올리게 하니, 무당들이 괴로워하여 모두 도망쳐 숨었다. 그래서 민가를 두루 뒤져서 잡아갔다.
사신(史臣) 백문보(白文寶)가 말했다. “음양을 조화시키는 일은 재상의 직책이다. 가뭄이 매우 심하면 마땅히 더욱 공경하고 두려워함으로써 하늘의 견책에 응답해야 할 것인데, 이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무당ㆍ판수에게만 비내리는 책임을 지우니, 잘못이 아니겠는가"


이 대목이 《고려사》에는 어떻게 등장하는가?
이해 충숙왕 세가를 보면 5월조에 다음과 같은 관련 기록이 보인다.

五月...庚申 以旱, 禁酒. 丁卯 聚巫, 禱雨六日...癸未 雨.

경신일에 가뭄이 심해지자 금주령을 내렸다. 정묘일에 무당을 모아 놓고 비를 내려달라고 엿새 동안 기도하게 했다....계미일에 비가 내렸다.

 

굿하는 무당


이를 통해 우리는 기우제는 성공률 100%를 보장하는 쇼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왜?
기우제란 무엇인가?
비가 올 때까지 지내는 쇼다.
비는 언젠가는 오기 마련이다.

한데 이 대목에서 허심하게 보아서는 아니 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을 기우제를 지낼 적에 무당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이를 《고려사절요》나 《고려사》 본문에서는 무巫라 하고, 《고려사절요》 해당 조목에 대한 백문보의 사론史論에서는 무격巫覡이라고 했다.

이때 기우제는 무당을 떼거리로 동원한 듯하다.
한데 이들이 6일간이나 계속한 기우제를 괴로워하다 못해 도망쳤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기우제 습속을 알아야만 한다.

 

쩍쩍 갈라진 호수 바닥. 가뭄이 극심할 때는 비를 만들어내야 했다. 



무당을 동원한 기우제 습속으로 대표적인 것이 폭무가 있다. 이 폭무는 한자로는 暴巫 혹은 曝巫라 쓴다. 曝은 후출자後出字다.

暴이라는 글자는 애초에는 햇볕에 쪼이는 일을 말하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폭력, 폭압과 같은 강제성을 의미하는 뜻으로 많이 사용됨에 따라 그 원초적 의미를 지니는 말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해서 햇볕에 쬐게 하는 뜻을 강조하고자 음은 같으면서도 그것을 확연히 드러내는 日을 부수자로 보탠 글자를 새로 만드니 그것이 바로 曝이다.

옛날 한지 책은 습기를 많이 먹고 좀이 슬기 쉬워 연례적으로 햇볕에 말리곤 했으니 이를 흔히 '포쇄(曝曬)'라 한다. 원래 발음은 폭쇄.

기우제에 등장하는 폭무는 바로 무당을 뙤약볕에 내놓고 고통을 가하는 일을 말한다. 한여름 푹푹 찌는 날씨에 기둥 같은 데다가 무당을 매어놓고는 햇볕을 쪼게 한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일사병에 걸려도 물도 주지 않았다.
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무당들이 6일간이나 계속한 기우제를 견디다 못하고 도망친 이유는 바로 폭무 때문이었다.

 

댐까지 바닥을 드러낸 가뭄


그렇다면 왜 이런 의식을 했는가?
무당은 신과 통한다는 신통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됐다.
이런 신관神官들이 가뭄과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으면 하늘이 이들을 불쌍히 여겨 비를 내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 폭무말고 자주 등장하는 기우제 의식이 토룡土龍 질질 끌기가 있다.

가뭄이 계속되면 흙으로 용을 빚어서 주로 어린아이들에게 길바닥에 질질 끌게 다니게 한다. 龍은 비와 물을 불러오는 신령이다.
이리 하면 하늘이 龍을 불쌍히 여겨 비를 내려준다 해서 이런 의식을 썼다.

 

비를 기원하며 웃통을 풀어해치고 키질을 하며 비를 기원했다. 



폭무와 토룡을 활용한 기우제를 정식화한 사람은 전한시대 공양학파 유학자인 동중서였다.

그는 널리 알려졌듯이 천인감응설 혹은 천견설을 주장했다.
인주人主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늘이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인주가 선정을 펼치면 하늘이 각종 상서로운 징조를 내리지만 그 반대로 폭정을 하면 가뭄과 같은 재앙을 내린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그의 논술집인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집약되어 있다.

천견설 혹은 천인감응이라 하지만, 이게 말이 쉽지 이렇게 되면 인주가 그대로 노출되어 버리는 위험성이 도사린다.
하늘이 견책하면 그 벌을 인주가 그대로 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인주가 책임을 지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이런 필요성에 따라 대타가 필요하다.
황제를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 쓸 사람....
이것이 바로 재상이었다.

 

1980년대 기우제를 지내는 불교의식. 불교 혹은 승려가 나서 비를 기원했다. 괘불을 걸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가뭄과 같은 재앙이 계속되면 거의 필연적으로 재상이 물러나는 모습을 포착한다. 백문보의 사론은 바로 이를 말함이다. (January 14, 2016)  

 

 

 

비를 오게 하려면 龍을 열라 패야

<日本 琦玉县 鹤岛市 “脚折(Suneori) 祈雨祭”..이는 대나무와 풀로 용을 만들어 사용한다> 요샌 용이라면 날개도 있고 아가리에선 핵분열하듯 불을 뿜는 이미지를 생각하겠지만, 이는 서양놈 드래곤dragon이라..

historylibrary.net

 

***

山梨県の大福寺薬師堂内には如来・菩薩・天部・権現・十二神将の頭部や断片が34軀分所蔵されています。いずれも腐食・風化が進んでいるが、11世紀後半~12世紀前半の仏像が多いです。『甲斐国志』(1814年編纂)飯室山大福寺条に「薬師長一丈六尺運慶ノ作別堂ニ安ンズ、十二神長各五尺許雨ノ行者ト称ス、歳旱スレバ里人集リ十二神ヲ水ニ浸シテ雨ヲ祈ル。今朽腐シテ肢体ヲ不辨ゼ」とあり、昔からこの十二神将は、旱魃に際し雨乞のために担ぎ出され、境内の池の中に漬けられていたとの伝承を有しており、このような雨乞いに仏像や神像を用いた例は他でも確認できます。(이는 무사시노대학 박형국 선생 소개다)

 

일본에서는 아래 책이 기우제 습속을 정리한 듯 하다.

 

渡航僧成尋、雨を祈る
『僧伝』が語る異文化の交錯
水口幹記 著
ISBN 978-4-585-22054-1 Cコード 1020
刊行年月 2013年6月 判型・製本 四六判・上製 376 頁
キーワード 伝記,交流史,宗教,中国,東アジア,日本史,平安,中世
定価:3,850円 

 

용은 비를 불러온다는 신령한 동물이었다. 그래서 기우제에는 반드시 용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