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연합뉴스 주최 고구려 고분벽화 특별전 도록이다. 이거 말고 축쇄판이 별도로 있다.
당시 북한지역 벽화고분 세계유산 등재 직후, 교도통신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했다.
나는 이 전시 반대했다. 첫째 사진이요 둘째 유사 전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함에도 전시는 그대로 나아갔고 나는 이에 포함되어 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담했다.
전호태 김일권 선생을 영입하고 당시 기억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천만원을 더 끌어와서 학술대회도 했다.
전시장으로 서울역사박물관을 급섭외했으니 당시 김우림 관장과 김영관 과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내가 도록 비싸다는 말 자주하는데 이거 실은 고백이다. 이 도록 12만원을 붙였다.
더 싸게 하자 했지만 이런저런 통계수치 내미는데 내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저 도록 상당수를 많은 사람이 도와주셔서 내가 팔았다. 이건 훗날 때가 되면 말하리라.
부제는 고민 끝에 [인류의 문화유산]이라는 내가 제안한 안이 채택됐다.
김기서 사장 이름으로 나간 발간사는 내가 쓰야만 한 글인데 초고는 민족주의를 탈각한 내용이 주류를 이뤘지만, 역시 기대처럼 무참히 빠꾸되어 내려와 입맛에 맞게 새로 썼다.
저 전시회 일본에서 교도통신이 먼저 했다.
하지만 우리는 더 훌륭한 전시, 더 훌륭한 도록을 냈다.
이 전시는 당시 남북화해 분위기에 편승해 평양에서도 전시했다.
그 평양전에 내가 쏙 빠졌다는데 서운함이 좀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이 전시 다한듯한 느낌을 줄지 모르나 택도 없는 소리요 내가 간여한 부분만 말하다 보니 그리 비칠 수 있으리라.
(2013.9.13)
***
이 전시는 내 우려와는 달리 대성공이었다.
개최를 애초 반대한 내가 좀 뻘쭘해졌다.
지금 와서 변명하자면, 전시 자체의 식상함이 반대 이유였다고 말해둔다.
당시 고구려 전시가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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