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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언론 노출을 극도로 삼간 윤장섭 호림박물관 설립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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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강남 신사분관에서 기자들을 만난 윤장섭 이사장. 김태식 촬영.



문화계, 특히 문화재계에서 거물로 치부할 만하지만, 극도로 대외 노출을 삼간 인물로 내가 두 사람을 꼽는데, 한 분이 그 유명한 영어학습교재 성문종합영어 저자 송성문 선생이며, 다른 한 분이 오늘 말하고자 하는 윤장섭 선생이다. 


그 유명한 짠돌이 개성상인 출신인 윤장섭 선생이 왜 그렇게 대외 노출을 꺼렸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 금융 혹은 대부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아는 그는 아마 그런 직업 특성상 그렇게 하지 않았겠느냐 막연히 짐작하기는 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이룩한 성보문화재단은 문화재 보물창고다. 흔히 그 재단 호림박물관은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그리고 간송 전형필이 건립한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국내 3대 사립박물관으로 꼽히거니와, 윤장섭과 전형필은 같은 개성을 출신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윤장섭 선생은 내가 직접 기억하는 한 공식 언론 노출을 딱 한 번 한 적 있다. 2012년 10월 17일이었는데, 이날 호림박물관 창설 30주년을 기념해 언론공개회에 정식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당시 이미 아흔살이었거니와, 아래 기사에서 언급되듯이 귀가 조금 어두운 것만을 빼고는 정정했다. 


우리 공장 DB를 검색하니, 1982년 호림박물관 개관 당시에도 언론 노출을 했던 듯 싶다. 당시 촬영한 우리 공장 사진을 보니 "재산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때는 직접 기자들을 대면한 듯 싶다. 



2012년 강남 신사분관에서 기자들을 만난 윤장섭 이사장. 김태식 촬영.



2012년 인터뷰 당시, 나이를 고려한다 해도, 그는 달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마 이런 성정이 그를 더욱 언론 노출을 꺼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리 눌변도 아닌 적어도 겉으로만 보면 천상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그런 그가 뒤늦게라도 이렇게 공개 노출을 하게 된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그간 언론에서 꾸준한 인터뷰 요청이 있었던 데다 30주년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그의 며느님 오윤선 관장의 설득이 있지 않았나 상상해 본다. 당시 신사분관에서 진행된 언론인터뷰에는 오윤선 관장이 배석했다. 


이후에도 선생은 일절 인터뷰에 응하지 아니했다. 적어도 언론 기준으로라면 은둔생활을 계속하다가 2016년에 타계했다. 


그가 타계할 무렵, 나는 해직 중이었다. 그의 타계 소식을 박물관 사람들한테서 들어 우리 공장 박상현 기자한테 알렸다고 기억한다. 


이런저런 객설이 길었다. 당시 인터뷰를 전재한다. 아울러 그의 타계 소식을 전한 박상현 기자 기사도 덧보탠다. 



2012.10.17 20:35:02

"싸게만 사려면 좋은 문화재 못 만나"

호림박물관 설립자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

"문화재는 개인재산이 아니라 공공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호림박물관을 설립한 호림(湖林) 윤장섭(尹章燮)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은 1922년생이니 올해가 구순이다. 개성 출신의 이른바 '개성상인'인 그가 구입해 지금까지 모은 문화재는 1만5천 점을 헤아리며 지금도 좋은 물건만 나오면 반드시 산다. 


1982년 호림박물관 개관 당시 윤장섭 이사장. 연합DB



이렇게 해서 그가 기업활동을 통해 모은 돈으로 구입한 문화재는 구입과 더불어 그가 설립한 성보문화재단으로 넘어가며, 이 중에서도 그의 말을 빌린다면 "예술적 가치가 특히 뛰어난 것은" 산하 호림박물관에 전시된다. 

 

윤 이사장이 모은 문화재 중에는 국보가 8점, 보물이 46건에 달한다. 그러니 이런 유물을 보유한 호림박물관은 글자 그대로 '국보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호림박물관이 이번 달로 설립 꼭 30년을 맞았다. 17일 서울 신림본관과 강남 신사분관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동시에 개막했다. 특히 이날 오후 4시 신사분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윤 이사장이 모습을 드러내 호림박물관 30년을 회고하는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개막식 직후 윤 이사장은 기자들을 만났다. 그간 수많은 언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그가, 구순을 맞아서, 그리고 호림박물관 개관 30주년을 맞아서 공식 언론 인터뷰 자리에 나선 것이다. 


청력에 약간 문제가 있는 듯했지만, 노령을 고려할 때 놀라우리만큼 건강하고 말투도 또렷했다. 


그는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부탁할 말이 혹시 있느냐는 질문에 "싸게만 사려는 것 같다"면서 "그런 식으로는 결코 좋은 문화재를 만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좋은 문화재는 "저쪽에서 아무리 비싼 값을 불러도 샀다"고 회고했다. 


그런 사례로 문화재 수집 초창기인 1974년 '백자청화매죽문호'를 구입한 일화를 들었다. 



1982년 개관 당시 호림박물관. 연합DB



나중에 국보 222호로 지정된 이 백자는 그가 거래하던 중간상인에게서 구매하지 않겠느냐는 의뢰가 왔다. 하지만 이 상인은 4천만원을 불렀다. 


"당시 4천만원이면 서울 시내 건물 1채 값이었어요. 변두리 집 한 채가 100만원 정도 할 때였지요. 깎을 수 없냐고 흥정을 하려했지만 한 푼도 못 깎겠답니다. 결국 샀습니다. 수수료도 제가 부담했어요.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수수료는 중간상인이 부담하지 매입자가 부담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샀습니다.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님도 좋으니 사야 한다 말씀하시더군요." 

 

요즘도 "나 같은 노인에게는 공짜"인 지하철을 이용하곤 하는 그는 마음에 드는 문화재를 만나기만 하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1991년 보물 1071호로 지정된 15세기 조선 초기 청자호는 지금은 몸통과 뚜껑을 완전하게 갖춘 완성품이지만, 각각 따로 구입했다. 


"처음에는 몸통을 샀어요. 그것만 있는 줄 알았지요. 한데 나중에 뚜껑이 따로 있는 거에요. 그것도 나중에 별도로 샀지요." 


그 자신이 고백하는 문화재 수집 인생은 1971년 5월26일에 시작한다. 


"이날 고미술 중개상인 양영복 씨라는 사람에게서 '청자상감유로연죽문표형주자'라는 고려청자 주전자를 250만원에 샀습니다. 이 청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다가 고향 개성 선배들인 최순우, 황수영, 진홍섭 선생과 본격 교유하게 되면서 이 분들에게 자문을 받아가며 모으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가 모은 문화재 중에서 그래도 가장 애착이 가는 하나를 골라달라는 주문에 윤 이사장은 1971년 황수영 박사가 소개한 일본 소재 고려 사경인 '백지묵서 묘법연화경'을 들었다. 이 사경은 고려말인 우왕 3년(1377) 하덕란이라는 사람이 죽은 어머니의 명복과 아버지의 장수를 빌고자 발원해 만든 것이다. 


"더구나 이 사경은 전체 7권 7책에서 빠진 게 하나도 없는 완질이에요. 황 박사님 권유도 있고 해서 재일교포가 소장한 이걸 구입하겠다고 했더니 팔 의사가 있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한데 얼마 뒤에 그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고인의 아들에게서 마침내 이 묘법연화경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아드님을 첫 번째 만났을 때 안 팔겠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제가 일본으로 찾아간 그날 저녁 그 아드님이 황수영 박사께 전화를 했더랍니다. 황 박사님이 보낸 사람이 맞냐고 꼬치꼬치 묻더랍니다." 


윤 이사장은 "문화재는 개인 재산이 아니다"면서 "내가 모은 문화재도 전부 (성보문화)재단에 기증했으며, 먼 훗날까지도 공공의 자산으로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taeshik@yna.co.kr

(끝)



2016.05.16 08:01:24

호림박물관 세운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기업 활동을 하며 모은 돈으로 문화재를 구입해 호림박물관을 세운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 15일 오후 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개성 출신인 호림(湖林) 윤장섭 이사장은 유화증권과 성보실업을 세운 경제인이지만, 문화재 1만5천여 점을 사들인 문화재 수집가로 더 유명하다.


호림박물관 신림관...실상은 이곳이 본관이지만, 무게중심이 점점 강남 신사분관으로 옮겨지는 느낌이다.



고인은 개성공립상업학교 재학 시절 개성박물관장을 지낸 고유섭의 특강을 듣고 문화재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이사장은 1971년 고미술 중개상인으로부터 '청자상감유로연죽문표형주자'를 구매하면서 문화재 수집을 시작했고, 개성 출신 선배인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 진홍섭 전 연세대 석좌교수와 교유하며 문화재에 대한 감식안을 길렀다.


그는 구입한 문화재를 성보문화재단으로 넘기고, 그중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은 1982년 10월 강남구 대치동에 세운 호림박물관에 전시했다.


호림박물관은 1999년 강남구 시대를 접고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전했고, 2009년 강남구 신사동에 분관을 열었다.


윤 이사장은 지난 2012년 호림박물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고려 사경인 '백지묵서 묘법연화경'과 '백자청화매죽문호'의 구입 일화를 소개할 만큼 불교 전적과 도자기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는 당시 "좋은 문화재는 저쪽에서 아무리 비싼 값을 불러도 샀다"고 회고하면서 "문화재는 개인 재산이 아니다. 내가 모은 문화재도 전부 (성보문화)재단에 기증했으며, 먼 훗날까지도 공공의 자산으로 후손에게 길이 전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원광 호림박물관 학예실장은 "윤 이사장은 최근까지도 문화재 수집을 계속했다"며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최근 보물로 지정 예고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정윤 여사와 아들인 재동(성보화학 부회장), 재륜(서울대학교 교수), 경립(유화증권 회장) 씨, 며느리인 오윤선(호림박물관장)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이다. 발인은 18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고양시 선영이다. ☎ 02-3010-2230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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