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고려사회가 문벌귀족제 사회라고 할 때는 하늘에서 뚝떨어진 논의가 아니다. 여기서 문벌귀족제사회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일본 헤이안 시대 정도의 사회라는 의미이다.
헤이안시대를 부수고 나온 것이 무가정권인 것처럼, 고려전기도 문벌 귀족제사회로서 이것이 무신정변에 의해 붕괴되었다. 그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고려사회가 귀족사회냐 아니냐 논의하는 것은 우리 같은 문외한에게는 평지돌출격의 느닷없는 토론일지 몰라도, 그 배후에 있는 속내을 보면 한마디로 고려시대 (무신란 이전)가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 내지는 일본의 헤이안시대하고 같은 성격이냐, 아니냐, 그걸 묻고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역사에서 고려 전기를 문벌귀족제사회로 본다는 이야기는 대략 이시기를 일본 헤이안 시대쯤으로 본다는 이야기이다.
한가지만 물어보고자 한다.
고려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고려의 과거제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정비되어 있었고 조선시대와 별 차이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바다.
2-3년에 한번 정기적으로 거의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시행되었고 과거의 최종합격자는 32명이던가, 한마디로 조선시대 과거의 기본 틀은 이미 고려시대에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제가 귀족제와 병존할 수 있을까?
딱 이거 한마디만 물어보고자 한다. 고려가 귀족제라면 그냥 자제를 요직에 임명하면 되지 뭐하러 복잡하게 과거제를 운용하냐 그 말이다.
과거제가 운용된다는 건 이미 더이상 그 사회는 귀족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고려귀족사회론의 근거를 보면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무리하게 고려사회에서 귀족사회의 증거를 찾아내고자 하려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려에 문벌이 있다. 그렇겠지. 그러면 조선은 문벌이 없었는가?
고려에 과거가 있었지만 문벌 자제들은 알게 모르게 특혜를 받았다.
그럴 수 있겠지. 그러면 조선시대 명문가 자제들은 그런 특혜가 전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고려를 헤이안시대 같은 귀족제 사회에 등치시키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는데, 후삼국 사회를 거쳐 성립한 고려는 이미 더이상 귀족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과거제로 관리를 뽑지 못한 통일신라는 귀족제겠지.
관리를 과거제로 3년에 한번씩 34명씩 착착 뽑던 나라는 더이상 귀족제가 아니다.
과거제로 관리를 충원하는 사회야 말로 바로 사대부사회로 고려전기에 이미 송대 사대부사회에 준하는 단계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아래 김부식에 대한 위키의 글을 보면, 과연 고려가 귀족사회인지 한번 다시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요즘 역사서술을 보면 김부식을 "문벌귀족"이라고 써 놓는 경우가 있는데 아래 글을 보시라. 김부식이 "문벌귀족"으로 출세한 것인가? 과거가 없이도 김부식이 출세할 수 있었을까?
"김부식은 신라 왕실의 후예로 증조부인 김위영을 고려 태조가 경주(慶州)의 주장으로 임명하였다고 한다.[2] 부친 김근이 좌간의대부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일찍 세상을 떠나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지위가 높은 가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부식과 그의 형제들은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김부식은 숙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안서 대도호부(安西 大都護府) 사록(司錄)과 참군 녹사(參軍錄事)로 배치되었고, 임기가 끝난 후 직한림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좌사간, 중서사인을 역임하였다. 1121년(예종 16년)에는 임금에게 경사(經史)를 강의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아래 링크는 고려사절요의 과거 급제 기사이다. 이렇게 자주, 그리고 많이 급제자를 만들어내는데 귀족제사회에서 뭐라러 이런 짓을 하겠는가? 특히 문벌귀족사회였다는 11세기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다수의 급제자를 낸 것을 본다.
이 정도 수준의 과거급제자를 내는 사회는 절대로 귀족사회로 부를 수 없다.
고려시대는 헤이안시대같은 귀족제 사회가 아니다. 송대와 같은 사대부사회에 훨씬 가까운 사회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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