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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무가정권 출범 전야 : 자칭 천황 후손의 현실

by 초야잠필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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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세이와겐지清和源氏와 간무헤이시桓武平氏가 천황가 지손으로 신적강하臣籍降下로 성립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신적 강하 후에는 이들이 고귀한 귀족신분을 유지한 것이 아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가로 전업했다.

전통의 귀족인 공가公家 아래서 요즘으로 친다면 어깨 역할을 하며 공가 귀족들을 무력으로 뒷받침하며 생존한 것이다.

이처럼 공가 귀족들을 칼과 활로 떠받치며 시중들던 사람들을 사무라이라 하는데 이 계급이 처음 출현했을 때는 귀족들로 부터 천대받던 계급이었다.

아무리 조상이 천황이라 해도 무가정권 출범 전야인 12세기가 되면 이미 세이와 겐지와 간무 헤이시 집안은 귀족이 아니라 사무라이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이 사무라이의 우두머리를 무가武家의 동량棟梁이라 불렀다.

세이와 겐지와 간무 헤이시는 12세기 당시 무가의 동량 중 가장 대표적인 혈족이다. 이 천황 후손 출신 무가의 우두머리들이 정권을 탈취한 것이 바로 무가정권이며 겐페이 전쟁은 그 과정으로 가는 길 도중 벌어진 무가의 동량들끼리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일전에 소개한 "신헤이케모노가타리新平家物語"라는 영화에는 이러한 당시 간무 헤이시의 정황이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천황가 지손이라 하지만, 주인공 다이라노 기요모리 平清盛(1118~1181) 아버지는 무력으로 큰 공을 세우지만 귀족들에게 천시 받는다.

자신의 조상도 천황이었지만 이미 이들은 공가의 일원이 아니라 공가를 시중드는 사무라이인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귀족들을 향해 "실컷 놀아라 내일은 우리의 것"이라고 갈파하는 이면에는 이런 정황이 있는 것이다.

이 일본사의 에피소드에서 우리 역사 무신정권의 무신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야말로 당연한 것이다.

필자는 일본사의 무가와 한국사의 무신은 사회경제적으로 동일한 신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헤이케의 분노와 한국사 무신의 귀족에 대한 분노는 동일하다는 뜻이다.

신헤이케 모노가타리의 한 장면. 뒤에 따라오는 말탄 인물이 주인공 다이라노 기요모리이며 앞에 말탄 사람은 그의 아버지 다이라노 다다모리이다. 다다모리는 공경들을 충실히 떠받들며 무력으로 큰 공을 세우지만 항상 천시받는다. 천황이 그에게 당상관 급 벼슬을 내리지만 이를 질투한 공경들을 그를 죽이려 한다. 다이라노 다다모리는 당시 힘이 있는데도 천시받던 초창기 사무라이 동량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천황가 후손이지만 이미 사무라이로 신분이 바뀐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귀족들이 놀고 있는 장면을 보며 내일은 우리들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의 말대로 사무라이는 공경 귀족을 타도하고 그 후 600여년간 일본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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