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도 쓴거 같지만, 일제시대,
고보졸업후 일본대학에 진학했다고 프로필이 나오는 경우는,
대개 그 대학의 예과 아니면 전문부에 해당한다.
이건 대학과정이 아니다.
대학 예과나 전문부는 당시 조선에 있었던 연희전문, 보성전문 등과 같은 전문학교, 즉 고등학교 과정이다.
이런 전문학교가 대학 부설로 있게 되면 그게 예과 혹은 전문부가 된다.
원래 전문부라는 건 전문학교였던 학교가 대학으로 승격하면 기존의 전문학교 졸업생이 졸업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였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짭잘하다는 것을 눈치챈 사립대학들은 전문부를 그냥 정식과정으로 대학에 남겨버렸다.
와세다, 메이지, 주오, 게이오 모두 전문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제시대 명사들 프로필에서,
모모 고보 졸업 후 일본 대학 졸업. 이렇게 나오면
대개는 전문부 졸업이다.
예과는 졸업하면 바로 본과로 진학하기 때문에 재학 연한도 더 길어지고 (5-6년) 졸업하면 학사호를 받는다.
하지만 대개는 여기까지 꼼꼼히 따지며 자기 프로필을 적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전문부만 졸업해도 일본 모모 대학 졸업이라고 써버리는게 대부분이었고,
적어도 조선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저학력자들이 넘쳐나는지라 전문부 졸업이건 학부 졸업이건 상관없이 일본 모모 대학 졸업이라고 퉁쳐줬던 듯 하다.
굳이 따져본다면 졸업 당시의 나이를 따져보면 짐작은 할 수 있다.
고보 졸업후 일본에 유학하여 3년 정도에 졸업했다고 하면 전문부 졸업이다.
고보 졸업 후 일본에 유학하여 5-6년 정도 재학했다고 하면 학부 졸업이다.
고보 졸업 후 바로 일본 대학으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조선에 고등교육기관이 절대적으로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미 30년대가 되면 고보 입시가 박터지는 단계가 되어 소위 명문 고보는 들어가기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한다.
조선땅의 경성제대는 물론이고 경성의전, 세브란스의전, 연희전문, 보성전문 등도 들어가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고,
선택의 다양화라는 점에서 고보졸업자가 조금 여유가 있다면 일본유학 길을 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일본 유학을 택했던 사람들 중이 1943년이 되면, 학병징집의 손쉬운 타겟이 되었다.
일본 유학갔다가 학병징집에 끌려가 일본군 장교가 되어 해방을 맞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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