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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골병의 뿌리 고사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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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요즘 고사리 채취 철이라, 엄마가 아버지 산소 주변으로 아들놈을 데리고 가더니, 이만치 따왔다. 아들놈더러 너도 꺾었냐니깐 지가 다한 것처럼 어깨 우쭐해하며 이야기한다. 

고사리는 불이 난 곳에 왕창 나는 그런 이상한 식물이다. 고사리 밭이 아니었던 곳도, 산불이 난 곳엔 고사리가 젤로 먼저 솟아난다. 이것이 지구에서 출현하기는 인류보다 훨씬 오래전임은 확실하거니와, 인류보다 훨씬 형님, 할배들인 돌덩이 한 가운데서 화석 형태로 출현하니 말이다. 

저리 꺾은 고사리는 데치듯이 살짝 삶은 다음 말린다. 

 

 

 

온도와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장터국밥 신세가 되어버려, 그 자체로는 상품성을 상실한다. 데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내가 설명하지는 못하나, 데쳐야 독성도 빼고, 무엇보다 건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아닌가 한다. 

헐벗고 주린 그 옛날 산촌에서는 고사리 역시 코딱지만한 농가소득원 중 하나였다. 저걸 저리 데쳐 말리면 수분 하나 없이 오그라 들거니와, 그렇게 말린 것들을 뭉치를 만들어 오일장 시장에다가 아버지가 내다 팔았으니, 일부는 현금화하고 일부는 물물교환이라, 갈치니 고등어며 하는 것들로 맞바꿔 오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맞교환한 갈치며 고등어를 들고 해질녁이 되어 돌아오셨다. 

나 역시 고사리 참으로 많이 뜯으러 다녔다. 무엇인가는 현금화를 해야 했으니, 그렇게 현금화 가능한 것이라곤 오직 산에서만 찔끔찔끔 주어지는 것이니, 고사리를 뜯기도 하고, 온산을 헤집으며 도레이(도라지)를 캐서 저 방식으로 팔기도 했다. 

겨울철엔 토께이(토끼) 잡으러 다닌다고 정신이 없었다. 나는 덫을 싫어했는데, 시장바닥에 가서 가는 철사를 사서, 그걸로 홀랭이(올가미)를 만들어 산을 다니며, 토케이가 다니는 길목에다가 설치하고는 그렇게 토께이를 잡아다가는 그걸 아버지가 내다팔곤 했다. 

토께이 홀랭이는 설치하고는 매일, 그것도 오전 중에 반드시 한번은 돌아봐야 한다. 그에 걸린 토께이는 시간을 놓치면 매가 뜯어먹기 마련이라, 애써 잡아놓고 매나 좋은 일 시키기 일쑤였다. 오전 너무 일찍 가면, 살아 버둥거리는 토께이를 마주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그건 차마 보기 힘들어 대략 지금으로 치면 오전 10시쯤 간다. 토께이는 이동을 대개 새벽녘 혹은 밤에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데 이것도 전쟁이라, 나와바리 같은 개념이 있기는 하나, 정해진 영역이 없어, 내가 놓은 홀랭이에 걸려 죽은 토께이는먼처 보는 놈이 임자라, 가져가 버리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내 홀랭이 다 거둬가는 일도 빈발한다. 그래도 그 넓은 산에서 누굴 범인으로 지목하리오?

얘기가 옆길로 샜다. 저 고사리 삶아 말리며 엄마가 그런다. 

"그래도 저 고사리 떠더서 냉장고 사고 했데이. 온 날메이(날망, 산) 댕긴다고 내가 지금 골빙(골병)이 들었데이." 

무심하게 보이는 저 고사리도 누군가에게는 꿈만 같은 냉장고 장만의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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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를 요새는 상업적으로 재배하기도 하는 게 아닌가 하는데, 저런 산촌에서 고사리로 농부들이 농가소득원으로 삼으려면 산불이 자주 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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