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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골짜기마다 이름이 있는 경북 김천시 대덕면 조룡1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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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인데 편의상 우리 집 옆 섬계서원이란 곳을 찍었다. 소백산맥 기슭 전형적인 산촌이라, 충적대지가 발달한 곳이 거의 없으니, 이런 동네서는 마을이 입지하는 조건이 예외가 없어, 거의가 산기슭에 자리를 잡는다. 응달 쪽에는 동네가 잘 형성되지 아니하는데, 이건 오래 생활해 보면 왜 그리해야 하는지 안다. 


이런 산촌에서는 동네가 한 무더기를 이루는 경우가 거의 없어 대체로 10~20채가 작은 무리를 이루는데, 그 전체 동네를 관통하는 내가 있고, 다시 그 내는 골짜기마다 다시 작은 시내가 흘러 하나로 합쳐진다. 


이런 작은 계곡을 따라 골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이런 골짜기마다 동네에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어, 작은 계곡 하나하나에 이름이 있다. 




이건 우리 동네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는 위성사진인데, 보다시피 전체를 관통하는 큰 계곡은 다시 그것을 세분하는 무수한 골짜기로 이뤄진다. 




이건 조금 더 세부를 들여다 본 모습인데, 등골이며 배나무골 지승골 같은 계곡 이름이 골짜기마다 보인다. 저들 이름 중에서 배나무골이라는 표기한 곳은 배나무골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고, 이꼬리골이라 한다. 무슨 근거로 저리 지명을 표기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저런 골짜기에는 동네가 없다. 요새 나는 자연인이다 하는 사람들이 가끔식 저런 데다가 근거지를 치는 모양인데, 우리 동네에서 그런 일을 불가능하다. 땅주인이 가만 두지 아니한다. 




이건 다시 더 세부를 들어간 건인데 사진 중앙쯤에 혹 저수지가 보이는지 모르겠다. 저 저수지가 그 위편으로 포진하는 논 몇 마지기를 먹여살리는 젖줄이다. 그렇다면 이 저수지는 어케 만들어졌는가? 땅에서 물이 솟는가?


아니다. 저 저수지 물을 채우기 위해서 상류 계곡에서 물을 끌어온다. 그렇게 끌고 온 물을 저기 일단 가두었다가 농번기에 사용한다. 


한데 보다시피 저수지 규모가 작아서 언제나 물부족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계곡에 물이 많은가? 없다. 찔끔찔끔 흘러내리는 물이라, 언제나 물부족에 시달린다. 요새야 수풀이 우거져 조금은 사정이 나아졌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외려 우거진 수풀이 물을 다 빨아먹어 더 물부족에 시달리는 역설도 있다. 


참고로 땅에서 솟아오르는 물, 그러니깐 샘물로는 농사를 짓지 못한다. 물이 차가워서 농사 망친다. 


이런 샘물로 농사를 지을 때는 방법이 있는데, 그 샘물을 한참이나 돌려서 물을 데핀다. 데펴야 그나마 농사가 되지만, 물이 생각보다 쉬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가끔 계단식 논 뒤켠에 샘물이 솟는 부분을 만나는데, 그 지점에서는 농사가 되지 않는다. 미꾸라지나 키워야 한다. 





근자 신라시대 몽둥이 목간이 발견된 경산 소월리 유적 일대 위성이다. 

한데 그 몽댕이 목간에 보면, 이 일대 제방[堤]이 있어, 그 제방 근처로 많은 골짜기[谷] 이름이 등장한다. 


제방과의 위치에 따라 토지 일정 면적당 거두는 세금이 다른 양상을 보이거니와, 예서 핵심 혹은 관건은 저수지다. 


이 저수지를 중심으로 그 일대 포진하는 각 골짜기 농토가 있었던 모양이라, 이 저수지를 어디로 확정하느냐에 따라 문서 판독 성과는 상당히 달라진다. 


지금의 소월지는 1950년대에 만들었다는데, 그 이전 일제시대 지적도를 보니, 현재의 제방 그 자리에 제방이 있었다. 


그렇다 해서 꼭 그 제방이 저 문서에 등장하는 그 제방이라 확정할 수는 없지만, 비단 그 외에도 이 주변에는 적지 않은 저수지가 존재한다.  


경상도 지정학적 기상학적 조건을 고려한 접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일전 아주 간략히 초했지만, 경상도 지역의 그것은 한반도 여타 지역과 또 다르다. 이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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