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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저 매를 찾아오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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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라 200년사를 정리한 《요사遼史》 중 第76卷은 열전列傳으로서는 제6第六이기도 하다.


이에는 야율해리耶律解裏·야율발리고耶律撥裏得·야율삭고耶律朔古·야율불로고耶律魯不古·조연수趙延壽·고모한高模翰·조사온趙思溫·야율구리사耶律漚裏思·장려張礪 9사람 열전을 한데 묶음한다.


이들은 요나라 초기에 주로 전장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특히 회동會同 9년(946), 遼에 의한 후진後晋 정벌전에 종군해 공을 세운 무장武將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서 8번째로 전기傳記가 수록된 인물이 야율구리사耶律漚里思. 그의 열전은 분량이 얼마되지 않으므로 근자에 김위현 교수 등이 작업한 《국역 요사國譯遼史》에 의거해 다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역문을 제시하기에 앞서 세부 번역의 적절성 여부를 검증하지는 않되 몇 군데 손을 봤지만 그것을 일일이 적기摘記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의 열전을 중시하는 까닭은 당시 매를 이용한 사냥에서 그 사냥하는 도구인 매를 훔치는 일이 있었다는 일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훔치는지가 아주 재미있으며, 더구나 이런 일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 사람이 바로 야율구리사이기 때문이다.




야율구아사耶律漚裏思는 육원이리근六院夷離蓳인 포고지蒲古只 후손이다. 용맹함과 지략을 자부해 전투마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는 쇠창을 휘두르니 가는 곳마다 (적군이) 바람에 쓰러지듯 했다.


회동會同 연간(938~946)에 (요나라가) 진晉을 정벌하고자 황상이 황하에 이르러 사냥을 하는데 마침 해동청골海東青鶻이 꿩을 낚아채는데 晉나라 사람이 강을 사이에 두고 비둘기로 유인해서는 (그 사냥매를) 가져가 버렸다.


황상이 좌우左右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누가 나한테 저 사람을 잡아오겠는가?”라고 하니, 구리사漚裏思가 내구마內廄馬를 내어달라고 해서는 (그것을 타고는) 강을 건너 그를 붙잡으면서 아울러 그 매잡이를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 여러 명을 죽이고는 돌아오니 上이 크게 기뻐하며 포상을 두터이했다.


이윽고 후진 장수 두중위杜重威가 망도望都에서 (요나라 군사를) 맞아 싸우자 강을 거점으로 힘써 전투했다. (이 전투에서) 구리사漚裏思는 말에 갑옷을 씌우고는 돌진하니 남은 군사들이 그를 따랐다.




포위되자 뭇 사람이 진영 중에 방비가 허술한 곳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하자 구리사漚裏思가 말하기를 “아마도 저들에게 다른 대비책이 있을 듯하다”고 하고는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방비가 두터운 곳을 헤쳐 나가는데 여러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니 모두 큰 참호였다.


그가 적을 헤아림이 이와 같았다. 이해에 적렬피실군敵烈皮室軍을 총령하다가 사사로운 죄에 연루되어 군사를 빼앗기고 관직이 박탈되어 죽었다.




耶律漚裏思, 六院夷離蓳蒲古只之後。負勇略,每戰被重鎧, 揮鐵槊, 所向披靡。

會同間, 伐晉, 上至河而獵, 適海東青鶻搏雉, 晉人隔水以鴿引去。上顧左右曰:“誰為我得此人?” 漚裏思請內廄馬, 濟河擒之, 並殺救者數人還。上大悅, 優加賞賚。

既而晉將杜重威逆於望都, 據水勒戰。漚裏思介馬突陣, 餘軍繼之。被圍, 眾言陣薄處可出, 漚裏思曰:“恐彼有他備。” 竟引兵沖堅而出;回視眾所指, 皆大塹也。其料敵多此類。是年, 總領敵烈皮室軍, 坐私免部曲, 奪官, 卒。(December 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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