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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관행이라는 이름의 편리, 개선이라는 이름의 불편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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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祿을 받는 생활을 한 지도 몇 해가 지났다. 그러다 보니 각종 행정사무를 해야만 한다.

한데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떤 일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야 없지만,

예컨대 한 번 잘못 처리한 부분을 뒷사람이 그대로 따라서 하고, 그걸 또 그대로 따라서 하고...

그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뒷사람으로서도 할 말은 있다. 앞사람이 그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이 일을 처리했고 오히려 이를 고쳤다가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기 때문이며, 안 그래도 바쁜데 어구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무언가를 고치는 과정이 더 고통스럽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임을 알면서도 하게 되고, 더러는 잘못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할 뿐이다. 물론 나 스스로도 이런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백운거사 이규보 선생도 이런 경험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글을 남겨놓고 있다.

길지 않으므로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옛사람이 고사故事를 잘못 인용하곤 하였는데, 뒷사람은 그것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또 뒷사람은 그것이 잘못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 줄 알면서도 별로 허물이라 여기지 않으니, 이를테면, 이백李白이 [왕희지가 거위와 바꾼 <도덕경>을] 황정黃庭이라 [잘못 인용]하고 두목杜牧이 [지휘한다는 동사] 일휘一麾[를 '깃발'이란 명사로 쓴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사람이란 능히 실수가 없지 않다. 비록 훌륭한 솜씨라도 혹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실수를 저지른 일이 있으면 이를 거울삼아 경계해야 할 터인데 또 이어받아 사용하니, 이것은 허물을 본받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은 특히 작은 실수일 뿐이다.

만일 이보다 더 큰 실수가 있더라도 또 옛 어진이가 사용한 것이라고 해서 그 잘못된 것을 그대로 이어받겠는가.

잘못을 그대로 이어받는다는 설을 비록 옛사람 중에도 혹 수긍한 이가 있으나 나는 취하지 않는다.


-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 의議, "잘못된 일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을 의론하다承誤事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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