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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제주 김한평 선생 송덕비

by taeshik.kim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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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종합경기장 뒤쪽에 '사평마을'이란 곳이 있다. 시골 어디나 있을 것 같은 마을회관이 있고, 그 한켠에 비석 몇 기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제주에서는 흔한 재일교포 공덕비들이다.

역사의 격랑 속에 고향을 떠나야했던 이들이 두고 온 산하를 잊지 못해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고, 여기 남은 이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자 비석을 세운 것이다.

2016년부터 3년간 전수조사한 결과 제주 전역에 재일교포를 기리는 비석과 동상이 742개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있는 비석 중 하나는 그중에서도 꽤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일부러 육지에서 돌을 갖고 오고 육지 명필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1921~2006)의 글씨를 받아 세운 비석이기 때문이다.

일중이 80년 넘게 살면서 숱한 비석글씨를 썼지만 제주에 남긴 그의 비석 글씨는 단 석 점뿐이다. 그러니 퍽 귀한 비석이 아닌가.

'김한평'이라는 이 마을 출신 재일교포가 1972년 전화 개설사업에 큰 돈을 쾌척한 것을 기려 이 비를 세운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마침 새마을운동이 막 시작되던 때였으니 그에 맞추어 진행되던 일이었을까?

앞면 글씨는 1970년대 초 일중 예서가 그렇듯 획을 길게 뽑았고 굵기에 리듬을 주었다. 뒷면은 한자 해서와 한글 궁서를 섞어서 썼는데, 글자 모양이 꽉 짜여져 있다.





특히 궁서는 긴장미까지 살짝 감돈다. 일중의 대표작이라고 하기는 어려울지라도 한 전형을 보여준다고는 할 수 있지 싶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제주 오라동 사평마을 사람들이 김충현의 글씨를 받아 이 비석을 세우게 되었는지는 이 비석만 보고서 알 길이 없다.

김한평 선생이 과연 언제 태어나셨으며 어떻게 사셨는지(지금은 아마도 돌아가셨겠지만...), 이 비석을 세우는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아실 만한 분 어디 없으려나.


*** 편집자주 ***

 

관부연락선




오사카 재일교포 연원을 따지면 제주 출신이 그리 많다.

식민지 시대에 제주와 오사카를 오가는 연락선이 정기운항한 데서 말미암는다.

부산과 오사카도 연락선이 있었다. 이른바 관부연락선이다. 그래서 오사카 재일교포 중에선 부산경남에 뿌리박은 이도 그리 많다.

오사카 재일교포 사회 또 하나의 특징은 오키나와인들과의 유별난 연대의식이다. 그들 역시 비슷한 처지라 동병상련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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