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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진주 운석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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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계정에서 과거의 오늘을 보니, 9년 전 오늘 2014년 3월 16일 이런 포스팅이 보인다.

고속도로 열나 밟아 서울 오는데 부장이 전활했다. 전국부에서 진주 운석 관련 기사 좀 써달란다는 내용이다.

이번 사안 난 실은 흘려버려서 모른다. 내 관할도 아니니 아돈기버퍽이었다.

한데 이런 전활 뒷좌석에서 듣던 아들놈이 신이 나서 진주 운석이 뭐니 실컷 떠들어댔다. 얘기인즉슨..진짜 운석이래? 90프로 이상 운석이라 했는데 진짜였구나? 아부지, 그러면 그게 우리나라 두번째야. 진주에선 두 개 발견됐데.

놀란 내가 니가 그걸 우째 그래 잘 아노 했더니 형은군 왈..

아부지는 기자면서 뉴스도 안 보냐?

그래 임뫄, 안 본다.

 

이 사진 우리 공장 제목과 설명은 다음과 같다....탐사객이 발견한 운석 추정 암석 (진주=연합뉴스) 경남 진주에서 발견된 암석이 운석이 맞다는 공식 발표가 나온 16일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의 밭에서 부산에 사는 이주영(36)씨가 발견한 운석으로 추정되는 암석이 땅 속에 박혀 있다. 이 암석은 가로 7.5㎝, 세로 5㎝, 폭 6.5㎝ 크기에 무게가 1kg정도로 둥근 모양이다. 2014.3.16 지방기사참고

 

비닐하우스에 떨어진 운석 추정 물체 (진주=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10일 오전 경남 진주시 대곡면 강원기(57)씨의 파프리카 재배 비닐하우스에 떨어진 운석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강 씨가 설명하고 있다. 2014.3.10 지방기사 참고...당시 우리 공장 사진과 설명이 이랬다.

 
 
하긴 그러고 보면, 어쩌다가 문화재를 담당하던 내가 당시를 떠들썩하게 한 진주 운석 문제까지 뛰어들게 되었는지, 저 기억에 의하면 전국부 쪽에서 요청이 왔다는데, 그래서 할 수 없이 뛰어들긴 했지만, 그래서 주문이 들어와 생산한 내 기사를 검색해 보니, 당시 나는 천상 문화재 기자였던 모양이라, 그 시각에서 시종 접근했으니 전문을 인용한다. 

기사 내력을 살피니 당시 부장은 이성섭이었다. 

 
2014.03.16 18:31:14
<진주 운석, 문화재로 접근…보호조치 착수>
문화재청, 전문가 검토 거쳐 천연기념물 지정도 검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문화재청은 경남 진주에서 잇따라 발견된 운석을 문화재보호법이 규정하는 '문화재' 중 기념물로 보아 천연기념물 지정 등을 통한 적극적인 보호조치에 착수하기로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6일 "현행 문화재보호법 2조(정의)에서는 문화재를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문화재의 네 종류로 나누는데 그 중 기념물의 세부 항목에 이번에 발견된 운석을 포함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이에 의하면 이번 운석은 지질 혹은 광물로서 역사적·경관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보호법은 "동물(그 서식지, 번식지, 도래지를 포함한다), 식물(그 자생지를 포함한다), 지형, 지질, 광물, 동굴, 생물학적 생성물 또는 특별한 자연현상으로서 역사적·경관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기념물 중 하나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문화재는 국가지정 문화재 중에서도 천연기념물 혹은 명승으로 지정되지만, 이번 운석은 자연경관이 아니므로 명승이 아니라 천연기념물 지정 후보가 된다. 

이 관계자는 "해당 운석에 대해서는 당연히 관련 전문가의 검토와 이를 토대로 하는 문화재위원회의 판단이 있어야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가 판가름난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로서는 운석이 희귀한 이상 우선은 해외 반출 등에 대비한 행정조치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운석이 어떻게 발견됐나요" (진주=연합뉴스) 황봉규 기자 = 운석이 잇달아 발견된 경남 진주시 일대에서 문화재청이 17일 현장 조사를 벌였다. 문화재청 관계자(오른쪽)가 두 번재 운석이 발견된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콩밭에서 운석 낙하지점에 대해 물어보고 있다. 2014.3.17 지방기사 참고...이를 보면 실제 당시 문화재청이 현지 조사를 벌였다. 이를 둘러싼 후속 문화재청 조치는 기억에서 사라졌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은 관세청을 비롯한 정부 당국에 해당 운석의 해외 반출 금지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발견된 운석은 국내에서는 두 번째다. 

국내 최초의 운석은 '두원 운석'으로 보고돼 있다. 기록에 의하면 두원 운석은 일제 식민 치하인 1943년 11월23일 오후 3시47분 전남 고흥군 두원면 성두리 186-5 야산에 떨어진 것으로 보고됐다. 

현재 낙하지점에는 안내판과 실물 모형이 전시 중이다. 이 운석은 가로 13cm, 세로 9.5cm, 높이 6.5cm, 무게 2.117kg이며 현재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하지만 소유주는 한국정부나 관련 기관, 혹은 한국인 개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다.  

 

지질자원연구원이 보관 중인 두원 운석

 
이 운석은 최초 발견자 소유였다가 당시 일본인 초등학교 교장 소유로 넘어갔다. 해방 후 운석은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추측된다. 

그러다가 이 운석은 지금은 정년퇴임한 모 대학교수가 우연히 그 소재를 발견해 몇 년간의 협상 끝에 김대중 정부 시절 우리나라의 희귀광물과 교환형식으로 영구 임대 형식으로 반환된 상태다. 

한데 영국 브리티시 뮤지엄(대영박물관)에서 발간한 운석 연감(Catalogue of Meteorites)에 따르면 한반도에 낙하한 운석은 모두 4점이다. 운곡운석, 옥계운석, 소백운석, 두원운석이 그것이지만, 두원 운석 외에는 소재지가 불명이다.
taeshik@yna.co.kr
(끝)

 

2014년 진주에서 발견된 운석. 당시 운석 찾기 열풍이 일었다. 왜? 비쌌기 때문이었다.

 
내친 김에 운석 또한 문화재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접근한 저 방식은 아직 시도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당시엔 해외반출을 막을 명분 마련이 중요했던 때라, 우선 저와 같은 접근법이 시도되지 않았나 한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 저 취재에 국립과학관 윤용현 박사가 당시 막대한 도움을 주었음을 특기한다. 

또 하나, 저것도 취재랍시며 파고 들다 보니, 아주 흥미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덧붙여 이후 한반도 운석과 관련한 여러 새로운 전개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나아가 그때 진주에 추락한 운석 중에 발견된 것들이 이후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더는 관심을 끊어 알 수는 없다. 

 

2014년 운석 열풍이 얼마나 광풍이었는지, 국회에서도 돌덩이 들고 나와서 질의하는 국회의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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