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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국가유산기본법에 대한 생각 두번째 - 국제화에 대한 의문 by Eugene Jo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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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기본법은 헤드라인부터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세부 분류해 국제기준인 유네스코 체계와 부합하도록 한다고 천명했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세 가지.

유네스코 체계가 국제적인 것은 맞는데, 그것이 기준을 형성하는가, 유네스코 체계가 과연 체계라고 이를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럼 그 체계 안에는 문화, 자연, 무형유산이 있는 것이 맞는가?


1. 유네스코 체계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유네스코가 정부간 기구로서 총 194개국이 모여있는 국제기구이니 유네스코에서 운영되는 제도가 국제적인 제도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국제적이기 때문에 기준이 된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문화재, 내지는 유산이라는 것은 문화재보호법에서도 나오고 국가유산기본법에서도 정의했듯이 민족문화, 즉 우리 삶의 뿌리이자 창의성의 원천을 형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유산은 우리 민족, 우리 삶, 우리의 문화의 고유한 부분들을 보여주는 대상물인지라 그 존재 자체가 우리나라에 특화한 것들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을 구분하고 분류하는 체계가 국제 규범을 참조하고 이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더라도 우리의 기준을 새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규범을 기준으로 삼아 재분류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것을 우리의 기준에 맞춰서 보존하겠다는 방향이랑은 상당히 거리가 있어보인다.

우리의 유산에 맞는 기준은 우리의 현실과 사정에 맞게 형성되어야 한다.


2. 유네스코 유산 체계가 체계인가?

세계유산협약은 하나의 체계라고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설계와 운영이 자연과 문화를 모두 포괄하여 고려하도록 기획을 했고 그렇게 운영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50년 세월동안 수없이 기우고 땜질하고 확장해왔다. 기존에 정의된 기념물, 건조물, 유적에 포괄되지 않아서 역사도시가 새로 정립되고, 문화경관에 대한 분류가 새로 생겼으며, 경로유산과 같은 것들이 계속해서 추가된 것들이다.

상징적인 사건이나 사상 등과의 연계가치로 등재될 수 있는 6번 조항의 포괄적 범위도 분쟁 유산에 대한 것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과거에 합의했었으나 작년 올해, 수많은 논의가 진행되면서 결국 최근 분쟁유산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이 바닥에서 계속 일하면서 확실하게 배운 점이자 세계유산협약에서 우리가 가장 참고해야 할 부분은 이미 형성되어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체계가 아니라 50년 역사상 분류가 확장된 양상을 좇아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는 제도적 탄력성을 구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유산협약을 벗어나서 다시 유네스코 체계라는 개념으로 돌아가보면 과연 무엇을 유네스코 체계라고 지칭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현재 제시되는 정책자료로는 세계유산협약, 무형유산협약을 토대로 삼은 것은 비교적 분명하다.

이 둘을 묶어 유네스코 체계라고 지칭을 한다면, 당연히 두 협약 간의 접점이 있고, 연계되는 장치와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두 협약은 전혀 별개의 제도라는 데에 있다.

온전하게 별개이고, 온전하게 따로 운영된다. 특히 지정 이후의 보존관리에 있어서 그 접점은 거의 전무하다.

간혹 어느 한 지역 안에 세계유산도 있고 무형유산도 있다를 인지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등, 그것을 하나의 체계라고 지칭하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이것이 체계로 인지되는 이유는 오로지 ‘등재’ 라는 절차를 진행하는 주체가 유네스코라는 동일 기관이기 때문이지, 그 제도 자체가 체계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두 개 협약을 모두 운영하는 사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기존에 운영되고 있던 세계유산협약은 이미 정해진 틀이고, 그 틀 안에서 무형이나 동산 유산을 커버할 수 없지만 자꾸 수요가 생기고, 이 틀을 효과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법적 절차를 못찾겠으니 엣다 그냥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이다.

즉, 현재 유네스코 체계라고 지칭되는 대상 자체가 명징한 장치가 구비되어 있다기 보다는 필요에 따라 임의적으로 확장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어디까지, 어떻게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적절하고 효율적인지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다시 앞의 1번 논지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도대체 무형유산협약은 없던 것이 갑자기 어디에서 튀어나왔을까?

무형협약은 이미 그 당시 국내의 필요에 의해서 무형문화재를 인정하고, 자체적인 제도로 뒷받침하고 있던 일본과 한국의 체계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만약 그 당시 국제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우리랑 일본 말고는 아무도 무형유산 제도가 없으니 우리도 없애거나 분류를 변화시켰으면 이렇게 새로운 국제제도를 촉발시킬 수 있었을까?


3. 하나의 체계 안에 공존해야 하는 문화, 자연, 무형유산

‘유산’이나 ‘보호’라는 체계로 확장해서 보면 유네스코에는 역시나 세계기록유산이라고 번역된 Memory of the World 프로그램도 있고, 수중문화재보호협약도 있고, 전시문화재보호협약인 헤이그협약도 있고, 국제지질공원 프로그램인 Geoparks, 그리고 생물권보호지역인 Biosphere Reserve도 있다.

그 뿐인가. 국제기준이라는 범위로 확장해보면 자연유산과 관련된 제도나 규범은 유네스코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IUCN의 보호구역 체계 카테고리는 협약이 아니니 가지 않고 국가간 협약 차원에만 머물러 있는다 해도 생물다양성협약, 람사르협약,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국제식물보호협약, 이동성야생동식물종의 보존에 관한 협약 등등 환경, 자연유산과 관련된 주요 협약이 약 8개 정도 기능하고 있다.

세계식량기구가 운영하는 주요농업유산제도도 있다.

국가유산기본법이 과연 문화와 자연 모두를 포괄하기 위해서 개정이 되는 것이라면 이렇게 자연유산과 관련된 부분들도 같이 고려되어야 ‘체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연 문화와 자연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로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

현재 세계유산 안에서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문화와 자연의 연계성, 합치성, 상호관계성이다.

10년 넘는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이, 깊이있는 고도의 논의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문화와 자연은 분리를 할래야 할 수가 없고, 우리가 대체적으로 문화유산으로 구분을 하더라도 그 안에 자연적 요소가 공존하며 그 반대의 경우에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상물 자체에 집중하면 안 되고, 왜 지정을 하는지, 즉 앞서 언급된 ‘가치 중심적 접근’ 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례로 생각하면 간단하다.

조선왕릉이라는 유산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문화유산이고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자연유산인가?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왕릉 내의 자연적 요소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가?  

병산서원에서 서원의 이름을 제공한 원인이자 만대루의 경관적 가치를 모두 책임지고 있는 병산을 유산의 일부로 고려한다면 이는 문화유산인가 자연유산인가?

마을의 당산나무는 민속적 가치가 지대한 문화유산인가, 나무가 그 대상물이기에 자연유산인가?  

게다가 요새 자꾸 확인되는 건 서로 다른 문화권이나 세계관마다 어디까지를 자연으로 여기고, 어디서부터 문화라고 인지하는지를 구분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부분이다.

오죽하면 중국 대표가 우리는 2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문화와 자연을 하나의 우주로 여겨 일원화한 세계관으로 잘 관리하고 있던걸 유네스코가 자연과 문화로 나누라고 해서 나눈지 겨우 40여년이 되어가는데 이제 와서 국제적인 논의가 다시 문화와 자연을 합치라고 하니 참 할말이 없겠다고 자조적인 논조로 말했겠는가.

형태로 구분하는 분류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어떻게든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세계유산협약 안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렇게 분류하는 것이 유산의 보존관리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는 학습결과가 자꾸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문화유산이냐, 자연유산이냐의 분류가 엄청 중요해보이는데, 사실상 앞으로 오래오래, 소위 천년만년 보존하고 관리하려면 이 분류가 생각만큼 그렇게 명확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데 있다.

국가유산기본법의 관점을 지정 입장에서 관리 관점으로 돌려서 보면 간단해진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유산협약이 간과한 부분이고 50년의 실패로 가장 고전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 기록유산 등등을 모두 관리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설정하고 구체화하는 부분이다.

유산 보존관리자가 과연 누구인가.

해당 국가이자, 해당 유산이 소재한 지역의 공동체 = 즉 우리의 상황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이다.

관리의 주체는 어느 나라든, 어느 시스템이든 대부분 하나의 기관이나 단체, 그리고 손에 꼽는 몇 명으로 집약되는 것이 현실이다 .

그렇다면 국가유산기본법의 분류상 체계화는 현장에서의 관리가 일체성, 일관성, 효율성을 갖도록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으로 연결되고 구성되어야 한다.

실제로 세계유산 안에는 문화와 자연 등재 기준을 모두 다 충족한 유산은 복합유산이라고 명명하고 그 분류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50년, 1000 건이 넘는 유산이 등재되는 동안 복합유산은 고작 39건에 머물렀다.

이 양태를 보면 복합유산은 사실상 실패한 분류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게 왜 실패했느냐.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바로 자연과 문화를 너무 자로 잰듯이 잘라내는 제도라서 그렇다.

복합유산은 자연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그냥 같은 공간 안에만 존재하면 될 뿐, 그 둘 사이의 가치가 연결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보존관리도 별도로 이루어지는 형태여서 현실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한 체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복합유산이 충족시키지 못한 자연-문화 간 연계성 갭을 채운 것이 문화경관이다.

50년동안 복합유산이 40건도 등재 안 된 것에 비하면 2002년에 도입되어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재되기 시작한 문화경관 카테고리는 고작 20년만에 121건에 달한다.

왜일까. 복합이든 문화경관이든 분명 자연과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유산 분류인 것은 맞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한 유산 안에서 자연과 문화가 서로 연계되어 하나인 것으로 인지하느냐 별개로 인지되어 각각의 유산으로 정립되느냐에 있다.

즉, 대세는 문화와 자연이 원활하게 연계되도록 운영하는 제도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하나 우리의 특화점으로 천연기념물이나 명승 제도를 꼽을 수 있다.

두 제도는 그 실체가 어떻게 운영되었든지 간에 그 이름에서부터 우리의 문화, 사상 안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아끼고 보존하는 철학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제도가 아닐까 싶다.

천연의, 자연적 대상물이지만, 인간이 부여한 문화적, 기념비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원시를, 그 자체의 생물적 생태적 가치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이 바라보고 인간이 아끼는 경관을 보존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이미 자체적으로 문화와 자연을 연계하여 보존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 제도의 특징을 참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천연기념물이나 명승 제도 자체가 완벽하다는 것도 아니고 시정할 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여태까지 60년 넘게 운영해 온 제도를 바꿀 때는 이미 밖에서 설정해놓은 틀에 우리를 맞추는 것보다는 우리의 현장에서 무엇이 강점이자 특징이고 우리의 세계관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인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국제 규범이 유용한 부분은, 그 틀을 활용해 우리를 다시 한번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데 있고, 이를 통해 우리가 바뀔 수도 있지만, 역으로 우리가 국제규범을 바꾸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간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진국이 어려운 이유는 누가 정해놓은 틀을 따라가는게 아니라 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인 건데, 그런 의미에서 국가유산기본법에서는 우리에게 맞는 틀이 스스로 만들어지는 모습이 조금 더 확실하고 자신있게 정립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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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기본법이 탑재한 함정들 by Eugene 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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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을 앞두며 개최된 정책포럼 유튜브를 시청하다보니 궁금한 점이 해소되기도 하고 의문이 더 생기는 점도 생겨 들었던 여러 생각들을 그냥 한번 적어본다. 1. 가치 vs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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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이는 오래도록 국내서는 세계유산 업무에 종사한 정부미였고 지금은 로마에 본부를 둔 이크롬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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