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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국가유산기본법으로 혼자 달려가는 문화재청

by 서현99 2023.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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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기본법이 '23년 4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23년 5월 제정되었고, 1년의 예고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으로 조직을 변경하는 수순을 밟고 있으며, 시행령 제정 및 관련법 추가 입법 등 여러 방면에서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

 

문화재청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른 국가유산기본법의 주요내용을 크게 정리해보면,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 명칭개선이다. 국가유산기본법의 주요 내용은 과거 유물의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 용어를 버리고,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유산(遺産)으로서의 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둘째, 분류체계 재정립이다. 국제기준과 부합하게 분류체계를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분류하고, 통칭 '국가유산'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셋째, 기존의 문화유산을 지정. 등록문화재 중심으로 보호하던 것에서 미래의 잠재적 유산과 비지정유산들까지 보호하는 포괄적 보호체계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지정.등록문화재 외에 우리가 흔히 '비지정문화재'라고 부르던 유산들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비지정문화재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각 지자체마다 조례를 제정하여 지정하는 이른바 '향토유산', '향토문화재' 등인데, 이전의 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문화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유산기본법에 의해 포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현행 문화재 체계(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문화재)>

 
 
<변경 국가유산 체계(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
 
 
지자체 학예연구사인 나의 입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 바로 이 세 번째 내용이다.
 

비지정문화재 중에서 향토유산, 향토문화재는 그나마 조례로 지정되어, 지자체 사정에 따라 어느 정도 보호.관리가 될 수 있지만, 이렇게라도 지정되지 않은 완전한 '비지정'(혹은 '미지정')은 문화재보호법도, 향토문화재보호조례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관리와 보호가 쉽지 않다. 

 

(문화재를 전공하고 업무를 하는 나에게 이들은 '지정'이라는 관리체계에 들어와 있지 않을 뿐, 관심갖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고 언젠가는 문화재로 지정될 수도 있는 대상이라 '비지정+문화재'에서 '문화재'에 방점을 두었다. 그렇지만 예전에 같이 일했던 행정직 팀장의 생각은 이들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지정'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이렇게 법의 기준에 꼭 맞게 생각해야 일이 편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의 차이 때문에, 진정한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학예연구사라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비지정문화재이지만, 엄연히 업무가 발생하고, 민원이 발생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비지정문화재 관련 일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이번 국가유산기본법에서 포괄적 보호체계 안에 비지정, 향토유산까지 포함시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자체에서 문화재 담당자가 해오던 일이 이제야 합법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관련된 국가유산기본법 조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14조(포괄적 보호체계의 마련)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제13조에 따라 지정ㆍ등록되지 아니한 국가유산의 현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미래에 국가유산이 될 잠재성이 있는 자원을 선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한편으로, 이와 같이 비지정 유산을 보호, 관리하여야 한다는 국가유산기본법의 제정은 현실적으로  지정, 등록문화재 외에 비지정, 역사문화자원, 미래유산 등을 합법적으로 보호.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기초지자체에서 해야할 문화유산 관련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유산기본법 제정을 시작으로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국가조직을 전환과 국가유산기본법에 국가유산진흥원 설치 조항을 넣어 산하기구 설립 등 조직을 정비하고 확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이와 관련해서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 뻔히 보이는 지자체의 문화유산 조직 확대와 전문인력 증원에 관한 의미있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국가유산기본법 제4조 3항을 보면 이전 문화재보호법에는 없었던 지자체에 조직 또는 부서와 전담인력을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 새로 명시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전국의 지자체에 문화재팀 또는 부서(과)와 인력이 아예 없으면 모를까, 지금 있는 조직과 인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저 조항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전담인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국가유산 체제 전환에 따라 지자체에 문화재 명칭이 들어간 조직 명칭 변경(문화재팀=>문화유산팀 등)이나 조례 개정(향토문화재보호조례=>향토유산보호조례 등) 등을 변경해달라고 지자체에 요청하고 있지만, 정작 국가유산기본법 제정으로 인한 업무 증가에 따른 지자체 문화유산 담당 조직과 전문인력 확대를 위해 문화재청은 무엇을  할 것인지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가뜩이나 지금의 지자체 조직과 인력으로 문화재 업무와 민원을 감당하기 어려워 지자체 문화재 담당자들, 특히 학예연구직들이 과중한 업무로 힘들다는 것은 문화재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수 년째, 전국학예연구회에서 지자체에 문화재 전담 부서와 전문인력 의무배치를 위한 조항을 신설하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결과, 작년에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이끌어 냈지만(현재 본회의 통과를 못하고 법사위 계류중이다),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된 이상, 이에 맞는 새로운 시행령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국가유산기본법이 '24년 5월부터 시행된다고 하니, 부디 문화재청은 혼자서만 국가유산청으로 달려나가지 말고, 최일선에서 문화유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기초지자체에 조직과 전문인력을 의무적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실효성있는 국가유산기본법 시행령 제정 등 해결방안을 모색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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