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렇게 희한한 벼루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일까. 전체적인 생김새나 조각 솜씨를 보면 어딘지 모르게 일본풍이 감도는데, 정작 일본에 이런 벼루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까 제쳐둔 나무함을 보자. 함의 뚜껑을 보니 글자가 써져 있다. 좀 글씨 잘 쓰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악필이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냥 넘기기 힘든 내용이다.
“記念品 步兵第七十五聯隊 通信隊 會寧豆滿江産岩石 名硯石”
이라!
2. 보병 제75연대는 일본 육군 조선군 19사단 소속으로, 함경북도 회령會寧에 주둔했던 부대다.
회령이라고 하면 조선의 북쪽 끝, 김종서(金宗瑞, 1390~1453)가 개척한 육진六鎭 중 하나로 두만강 동안東岸에 자리한 국경도시다.
이곳은 두만강을 건너려는 이들과 건너지 못하게 하려는 이들 사이에 치열한 갈등이 일어나곤 했던 곳이다.
존경하는 임경석 선생님의 신간 <독립운동 열전>을 보면, 열혈 청년들이 현금 15만원(지금으로 치면 150억원 가량)을 탈취해 독립군에게 전달하려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밀정의 밀고로 실패하고 만 일명 ‘15만원 사건’이 등장한다.
그 사건의 발단이 된 15만원이 바로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용정龍井지점으로 가던 현금이었다.
그렇게 민감한 지역에 주둔했던 군부대가 한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독립군과 맞서 싸웠던 것이 이 연대였고, 패배 이후 일제가 보복하기 위해 일으킨 경신참변 당시에도 이 연대가 학살을 여럿 저질렀다.
독립군이나 일반인을 마적馬賊으로 몰아 처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던 셈이다.
최근 발굴된 보병 제75연대 사진첩을 보면 그런 장면이 꽤나 나온다.
3. 일제강점기, 두만강 이쪽과 저쪽에는 독립운동가와 일본군만 있던 건 아니었다.
김동환(金東煥, 1901~?)의 시 <국경의 밤>을 보면, 주인공 순이가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라고 하면서 남편의 생사를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거기서 순이 남편은 강을 몰래 건너갔다 건너오면서 장사를 하는 밀수꾼이다.
압록강변과 두만강변에는 생필품을 싸게 구하거나 비싸게 팔려고, 또는 금이나 귀중품의 시세 차익을 노리고 몰래 국경을 넘으려는 밀수꾼들이 드글드글했다.
그 유명한 시라소니가 몰래 기차를 부여잡고 신의주와 안둥安東을 오가던 밀수꾼 출신이었다.
약간 핀트가 벗어났지만, 회령 일대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국경수비대라고나 할 보병 제75연대도 그런 이들을 막기 위해 꽤나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군의 활동이 위축된 뒤에도 일제는 끝내 그런 밀수꾼들을 막을 수 없었다.
순이의 남편은 ‘마적’에게 죽어 돌아왔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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