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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유물 소개 001] 어떤 콥트교 수사가 여동생에게 보낸 서신

by taeshik.kim 2023.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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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환 이집트학 박사

 

 

아멘엠옵펫(Amenemopet) 분묘(TT29)에서 발견된 석편 도편 문헌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주름진 도편이 콥트교 수사 프란제(Frange)가 누이 티시에(Tsie)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기원후 8세기, 테베(Thebes: 오늘날의 룩소르시) 서안 세이크 압델 엘-쿠르나(Sheikh Abd el-Qurna).

 

 

오늘은 좀 특별한 유물을 소개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이 유물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National Museum of Writing System)의 동의를 받아 여러분들께 소개 드리게 되었습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현재 송도국제신도시에 건설 중이며 2023년 5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아래 보도자료 참조]. 문자 일반에 관한 이해 증진을 목표로 건립되는 이 박물관에는 고대 이집트의 문자유물도 여러 점 전시될 예정이며 저는 현재 이들 유물의 전시도록과 전시패널 제작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특별전과 일반 전시회 등 공공 전시에 참여하기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지난 2019년 12월 16일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National Museum of Korea) 세계문화관(World Art Gallery) 이집트관과 관련한 도록 제작과 자문 업무였고, 두 번째는 2021년 6월 22일부터 2022년 4월 24일까지 전쟁기념관(War Memorial of Korea) 특별전시실에서 개최된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의 도록 번역과 자문 업무였습니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이번 국립세계문자박물관과 관련해서는 소장품 수집 단계에서부터 감정과 평가에 참여해왔습니다. 때문에 전시도록과 전시패널에서 소개될 유물들에 대해서는 제법 친숙한 상태입니다.


오늘 페친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볼 텍스트는 기원후 8세기 초 콥트교 수사 프란제(Frange)가 주름진 도편(陶片: ostracon)에 콥트어(Coptic)로 작성한 서신입니다[아래 댓글란의 사진 참조]. 

 

수신자는 그의 누이 티시에(Tsie)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도편은 고대 이집트의 아멘엠옵펫(Amenemopet)이란 인물이 테베(오늘날의 룩소르시) 서안에 조성한 분묘(TT29)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멘엠옵펫은 신왕국 시대 제 18 왕조 아멘호텝 2세(Amenhotep II: 기원전 1427-1400년) 치세에 총리대신(vizier)으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 분묘는 아멘엠옵펫의 실제 매장지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대신 기원후 7-8세기 콥트교 수사들의 은신처로 활용되었습니다.

 

아울러 이 분묘가 위치한 세이크 압델 엘-쿠르나(Sheikh Abd el-Qurna) 인근 쿠르넷 무라이(Qurnet Murai)에는 성 마르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마가복음」의 저자로 알려진 성 마르코(St. Mark: 12-68년)는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설립하고 알렉산드리아의 초대 주교를 역임한 인물입니다.]

 

이 분묘에서는 이 지역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수사들이 작성한 약 1,000여 점의 석편·도편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현재 피트리 박물관(Petrie Museum),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등 세계 각지의 주요 박물관에 분산 소장되어 있습니다.


콥트어는 기원후 1세기말부터 11세기까지 사용된 고대 이집트어의 마지막 발전단계에 해당하는 언어로서 당시 기독교로 개종한 이집트인들은 성서의 번역 등을 위해 기존 상형문자(hieroglyphic)·신관문자(hieratic)·민용문자(demotic) 체계를 버리고 대신 알파(α)에서 오메가(ω)에 이르는 그리스 자모에 이집트어 고유의 음을 표기할 수 있는 자음 6개 – 샤이(shai)·파이(fai)·호레(horeh)·잔자(djandja)·퀴마(kyima)·티(ti) – 를 추가한 콥트어 문자체계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3,000년 간 지속적으로 사용한 문자를 종교적 이유로 교체한 사례로서 한 문화권에서 종교적 혹은 실용적 이유(예: 터키·베트남)로 문자체계를 바꾼 역사적 실례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학에서는 이 시기에 사용한 언어를 콥트어, 이 콥트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한 문자체계를 콥트문자로 각각 부릅니다.


콥트어에는 이집트 남부 테베 방언인 사히드 방언(Sahidic)·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방언인 보하이르 방언(Bohairic)·이집트 중북부 파이윰(Fayum) 호수 지역 방언인 파이윰 방언(Fayyumic)·이집트 중부 패노폴리스(Panopolis) 방언인 아크밈 방언(Akhmimic) 등 여러 방언이 존재했습니다.

 

한데 콥트어 문자체계 도입 후 모음이 표기되면서 비로소 이들 방언은 구별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들 방언 중 사히드 방언이 기원후 6세기부터 콥트어 방언 중 표준어로서 문헌 작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기원후 11세기부터는 보하이르 방언이 사히드 방언을 대체하며 표준 콥트어 지위에 올랐습니다.

 

콥트어 문서는 대부분 성서 번역본이나 수사들의 금언 등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만 이 도편은 당시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서신이라는 점에서 매우 희귀하고 이채로운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도편 서두에는 “나를 위해 기도하라. 나는 프란제, 그의 누이 티시에에게 (다음과 같이) 쓴다”고 해서 서간체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서신 전체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1-13행):

 

“나를 위해 기도하라. / 나는 프란제, 그의 누이 티시에에게 (다음과 같이) 쓴다. / 보라, 나의 이 단지(가 여기 있다). 이것을 너에게 보낸다. / 큰 단지를 네가 절인 생선으로 채워서 그것을 나에게 보내라. / 왜냐하면 내 심장이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이 서신을 통해 프란제가 티시에에게 단지와 함께 이 서신을 보내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과거 사용된 적이 없는 신왕국 시대 귀족 분묘에서 수행하며 매우 소박한 음식을 먹었다는 것과, 그로 인해 혹은 엄격한 수행 생활로 현재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아픈 곳이 “심장”이라고 했습니다만 고대 이집트어로 “위장”을 r-jb “심장의 입”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실제로 아픈 곳은 위장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어로 소화불량에 의한 속쓰림을 “heart-burn”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용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당시 절인 생선이 위장병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위장병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추정에 더욱 힘이 실립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고대 이집트의 신관들은 금새 비린내와 악취가 나는 생선을 부정한 음식으로 여겨 절대 먹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편지가 아멘엠옵펫 분묘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실제로 누이인 티시에에게 전달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프란제는 원하던 생선절임을 받아서 자신을 괴롭히던 위장병을 치료할 수 있었을까요?

 

아래 원문 중 첫 번째는 석편에 쓰인 실제 콥트어 텍스트이고 두 번째는 일부 표기 상 변형을 앞서 언급한 방언 중 문헌학에서 표준으로 여겨지는 사히드 방언 정서법에 따라 제가 수정한 것입니다.

 

 

내년 5월에는 이 유물을 비롯한 다른 콥트어 텍스트를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직접 관람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련 보도자료: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99995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콥트어 #콥트교 #사히드 #프란제 #티시에 #세이크압델쿠르나 #성마르코 #수도원

 

 

(202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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