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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개한테 물려죽은 진흥왕의 태자] (5) 태자의 굄을 받은 보명궁의 주인

by taeshik.kim 2023.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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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보명궁주寶明宮主가 (동륜) 태자의 총애를 받았지만 몸을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장사 여러 명과 더불어 (보명)궁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갔다. (보명) 궁주가 미실과는 왕의 총애를 다툴 수 없음을 알고는 감히 태자를 거부하지 않아 일이 성사되었다. 그 뒤 태자가 매일 밤마다 (담장을) 넘어 들락거리다가 이레째 되는 밤에는 태자가 아무도 거느리고 않고 혼자 들어갔다가 개[獒]한테 물렸다. 궁주가 안고 궁중으로 들어갔지만 동틀 무렵에 죽었다."

화랑세기 11세 하종夏宗 전에 보이는 대목이다. 

동륜태자가 죽은 일은 삼국사기에도 보이거니와, 다만 사기에는 그 이유가 보이지 않는 대신, 화랑세기에는 그 전말이 이리 나온다. 

이 일은 신라 중대 왕실, 특히 진흥왕시대에 정치 지형을 바꾼 일대 사건이다. 

앞서 보았듯이 진흥왕은 어머니 지소가 점지한 왕비 숙명까지도 사도로 교체했으니, 그런 이유 중 하나가 사도 태생 동륜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흥은 태자 역시 숙명이 낳은 정숙에게서 사도 태생 동륜으로 바꿨으니, 대과가 없는 한 동륜은 아버지 뒤를 이어 신라를 접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애지중지 후계자로 키운 동륜이 어느날 느닷없이, 그야말로 개죽음을 했다. 것도 자기 후궁과 관련된 연사戀事로 죽었으니 그 허망함은 말해서 무엇하랴?


진흥왕을 죽음으로 몰고간 황화수은



사건이 터지면 당연히 그 조사가 잇따르기 마련이다. 

피바람이 불었다. 특히 보명궁으로 동태자를 안내한 종자들을 조사해 보니, 왕의 애첩으로 총애를 독차지한 미실을 따르는 낭도가 많았다. 

불똥이 미실로 튄 것이다. 

나는 이 사건 뒤에 미실의 음모가 있다고 본다. 

이 개죽음은 삼국사기에도 그렇고 화랑세기에도 홍제 원년(572) 3월에 있었던 일이다. 이때는 화랑이 폐지되고 다시 법흥왕 시대 그 전신인 원화로 돌아가, 왕의 총애를 받던 미실이 원화가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이 일은 미실을 위태롭게 했다. 

마침내 미실은 원화 자리에서 쫓겨나고 사실상 후궁 자리에서도 축출되고 만다. 

후계자 문제가 대두하니, 같은 사도 태생의 둘째아들 금륜으로 태자 자리가 돌아간다. 

이에서 음모가 일어난다. 

진흥은 나이는 40대 중반 한창이었으나, 이미 장기간 집권에 따른 염증이 극에 달한 시기였으니, 이때 그가 의지한 것이 두 가지였다. 
첫째 섹스 탐닉이요 둘째 약물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진흥왕을 이른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본다. 

특히 금단金丹은 결정적이었다. 

진흥은 약물과다 복용으로 죽었다. 

삼국유사에서는 그가 신선을 매우 숭상했다 했거니와, 맞다, 진흥은 도교에 심취했거니와, 그래서 금단을 과다복용했거니와, 이래서 죽은 것이다. 

단재는 진흥이 신선술을 숭상했다는 기록을 개소리라 평단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틀린 것은 삼국유사가 아니라 단재 자신이었다.

삼국유사에서 말한 도교 심취, 그것이 두 가지로 발현하니, 첫째 화랑 제도 자체가 도교 교단이고, 둘째, 그것이 표상하는 약물 복용이 그것이다. 

이 약물과다 문제는 신라 적석목과분 발굴로 명징하게 증명된다.
당시 신라는 약물의 전성시대였다.(이 약물 실태에 대해서는 내가 그간 이곳저곳 싸지른 논고들을 참조하라) 

화랑이 폐지되고, 원화가 부활하며, 그것이 다시 폐지되고 화랑이 부활하니 이 부활 시점이 바로 576년이다. 

삼국사기에서 말한 화랑 창설 시점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삼국사기가 말한 화랑 창설 시점은 실은 그것이 폐지되고 원화가 부활했다가 다시 살아난 시점을 말한 것이다.

지들이 틀린 줄도 모르고 삼국사기를 향해 틀렸다 삿대질해댄 이 누구인가? 

20세기, 21세기 역사학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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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한테 물려죽은 진흥왕의 태자] (4) 거칠부와 구진은 처남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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