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 제15권 잡저雜著
이 정승의 정묘년 일을 쓰다[記李相丁卯年事]의 한 대목
이날 새벽에 나는 성동城東의 집에 있어서 대궐과의 거리가 꽤 멀었는데, 변變을 듣고 급히 달려가 경복궁 광화문 밖에 이르니, 문이 환하게 열려 있고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곧바로 들어가 근정전에 이르자, 백관 및 하인들이 뜰 가운데 모두 모여 시끄럽게 떠들어 어지러운데도 금지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아마 창졸간에 사람들이 할 바를 잃게 되는 모양이다.
금위禁衛들은 경계하여 지키는 차비를 다른 날보다 배나 세밀히 하여야 할 터인데, 소홀함이 이와 같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권호기 박희창 은정희 조복연 최순희 (공역) | 1977
是日曉。余在城東家。距闕頗遠。聞變急。赴至景福宮。光化門外門洞開。內無一人。直入至勤政殿。百官及下人皆聚庭中。喧闐雜亂。無禁止者。盖倉卒之際。人人失措。禁衛警守之具。當倍密於他日。而其疎闊如此。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
이에서 말하는 이 정승이란 정묘년(1567, 명종22) 6월 명종이 승하할 당시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을 말한다.
후사가 없던 명종은 후사를 지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그 후계구도를 둘러싼 혼란이 예상되던 시기이기는 했다.
갑작스레 왕이 죽음에 이르자, 이준경과 심통원沈通源이 궐내로 들어가 병상에서 후사가 누구인지 듣고자 했지만, 이미 인사불성인 상황이었다.
그건 그렇고 왕이 죽으면 비상계엄령을 즉각 발동하기 마련이고, 궁궐 출입은 엄격히 통제하기 마련인데, 개판이라, 광화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궁궐 앞쪽에는 사람이라곤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형국이라, 다만 왕이 죽은 침전 앞마당에 궁궐 잡일을 하는 사람만 모여서 왁자지껄 시끄럽게 굴 뿐이었다.
사극을 보면 왕의 죽음이 매우 장중하게 치러짐을 보곤 하나, 다 개소리라 현실은 달랐다.
의궤儀軌만 보아서는 실상이 보이지 않는다.
의궤를 버려야 시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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