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 제15권 잡저雜著
상산학象山學은 불학佛學과 동일함[象山學與佛一樣]
경오년(1570, 선조3)과 신미년(1571, 선조4) 연간에 나는 수찬修撰으로 옥당玉堂에 있으면서 상산象山(육구연陸九淵)의 이론을 좋아하여, 경계될 만한 말을 베껴서 한 책을 만들어 출입하는데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매양 주자가 상산을 공격한 것이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입으로는 감히 이를 말하지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의심하였다.
그 뒤 내가 상을 당하여 금계산金溪山에서 상주 노릇 할 때에, 한 노승이 불경佛經, 《대혜어록大慧語錄》, 《증도가證道歌》 등의 책을 보여 주기에 한가한 틈에 거의 다 보았더니, 기축機軸과 운용運用은 다 상산의 학술과 서로 비슷하였다. 다만 상산은 개두환면改頭換面하여 유가의 학설로 꾸몄을 뿐이었다. 이로부터 주자의 이론만을 독실하게 믿고 감히 의심을 하지 않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권호기 박희창 은정희 조복연 최순희 (공역) | 1977
庚午辛未間。余以修撰在玉堂。愛象山之論。因抄出警語作一冊。出入自隨。每疑朱子攻象山。未免太過。雖口不敢言。而心嘗疑之。其後余遭憂。守制于金溪a052_294c山中。有老僧持佛經及大慧語錄證道謌等書見示。閒中搜閱幾盡。其機軸運用。皆與象山學相出入。特象山改換頭面。文以儒說耳。自是。於朱子之論。一向篤信。不敢有疑云。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0
개두환면改頭換面은 간단히 말해 슬쩍 바꾸다는 뜻이니, 더 간단히 말하면 표절했다는 뜻이다.
한데 가만 생각하면 저 말 열라 웃긴다.
저에 의하면 서애는 육구연 말에 상당히 끌렸다. 그래서 그의 말로 요긴한 것들을 묶어 지니고 다니면서 수시로 봤다. 그러면서 왜 주희가 이렇게 좋은 사람을 공격한 일을 부당하다 생각했다.
다만 그런 생각들을 표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왜? 자칫하면 다치치니깐
그랬던 서애가 상중에 할 일도 없어 노승한테서 빌린 불경들을 읽다가 어랏? 이거 보니 육구연 학설인데? 육구연의 참신한 견해라는 것들을 알고 보니 불가의 설을 치환한데 지나지 않네?
불가의 학설을 표절했다 해서 육구연에 대한 관심을 단념해? 그것이 중요한가? 그가 끌린 것은 그렇다면 불가의 설인데, 불가는 왜 안 되고 주희여야만 했는가?
조선 사상사가 망조가 들어가는 한 단면을 저에서도 본다.
그건 그렇고 주희는 불가의 설을 개두환면改頭換面하지 않았는가? 주희야말로 불가, 특히 선종의 그것을 베낀 데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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