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에서 왕, 왕비 등을 부를 때 "마마"라고 한다. 이 "마마"라는 말이 중국에서 왔음은 조선시대 임금들도 알고 있었다.
영조 대에 보면 이 "마마"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왕과 신하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나라 궁중용어를 보면, 몽골 기원인것도 꽤 있다. 고유어라면 모르지만 한국이 중국 지배를 받던 나라도 아닌데 어디서 이 용어들이 들어왔을까?
특히 단순한 외래어가 아니라 왕실 전문용어에 가까운지라 이 말들이 외국에서 들어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미 전문가분들 연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몽골 간섭기에 들어온것 아닐까 한다. 왜 하필이면 몽골간섭기일까? 우리나라 궁중 잡무 관리체제가 이때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궁녀와 환관들이 왕을 근시에서 돕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다.
환관과 궁녀 숫자는 그다지 많지도 않았고 시대가 거슬러 올라가면 환관은 궁에 있지도 않았다. (환관은 통일신라시대에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정원이 많지 않았다. 환관 수는 고려말, 조선시대에 크게 늘었다.)
조선시대처럼 환관과 궁녀가 왕 주위를 둘러싼 시스템은 몽골간섭기에 본격화하지 않았나 한다.
아마도 한국사에서 환관과 궁녀의 기원은 이보다 더 오래되었을 수 있겠지만 이들이 왕을 포위하고 왕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조선시대 모습의 원형은 어쩌면 몽골에서 시집온 몽골간섭기 왕비들이 만들어 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들이 후일 조선시대 내시부와 내명부의 원형이 될 궁궐 안 모습을 중국식으로 일변해 놓은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몽골 출신 왕비들은 한국사에 매우 큰 족적을 남긴 셈이 될 터이다.
그렇다면 원래 모습은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궁내 환관과 궁녀는 정체성 측면에서 왕의 사노에 가까운데, 이들대신 상류층 남성과 여성이 근시를 하고 궁안 잡무를 담당하던 일본 헤이안 시대와 더 가까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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