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박제상朴堤上은 실은 《삼국사기》 표현이며 《삼국유사》에서는 김제상金堤上으로 나온다. 그의 행적은 중언이 필요 없다.
한데 문제는 그의 마누라...남편이 왜국에서 신라 왕자 미사흔을 구출하고 죽자, 산에 올라 바다 건너 왜국을 바라보다 죽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는 전설의 이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아무도 몰랐다.
한데 《화랑세기》가 출현한 이후에는 너나 가릴 것 없이 박제상 마누라를 치술鵄述로 간주하는 글이 잇따른다.
도대체 실명을 알 수 없던 박제상 마누라가 치술鵄述로 확정하기까지 무슨 곡절이 있는가?
《화랑세기》에 그리 나온다. 《화랑세기》에 나오기 때문에 그가 바로 치술鵄述인가? 이는 별개 문제다.
《삼국유사》 왕력편 신라 실성왕實聖王 조를 보면 그 마지막에 흥미로운 언급이 있다.
"왕은 치술의 아버지다[王卽鵄述之父]"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몰랐다. 한데 《화랑세기》를 보니 이 말이 무슨 뜻인지가 비로소 밝혀졌다.
《삼국유사》 '나물왕과 김제상[奈物王金提上]' 이야기를 보면, 김제상 마누라는 왜국에서 남편이 죽자 세 딸을 데불꼬 '치술령鵄述嶺'이라는 고개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철퍼덕 자빠져서 울다가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 치술령이 지금의 경주와 울산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위치하는 산이다.
한데 《삼국유사》를 보면 이런 인연에서 그를 후대에는 치술신모鵄述神母라고 하니, 지금도 그를 제사하는 사祠가 있다고 했다.
《화랑세기》가 출현하고, 거기에서 김제상 마누라가 치술공주로서, 다름 아닌 실성왕의 딸이라는 언급이 나오고 나니, 비로소 이제서야 《삼국유사》 왕력편에 보이는 문제의 구절....
"왕은 치술의 아버지다"
라는 언급이 비로소 해명된 것이다. 아무도 몰랐던 이 비밀을 오직 《화랑세기》만이 풀어줄 뿐이다.
이것이 모두 《화랑세기》의 힘이다. 함에도 어떤 놈도 《화랑세기》를 인용하지 않은 채 지가 밝혀낸 사실인양 버젓이 그런 주장을 일삼는다.
(201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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