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로 기억합니다. xxx박물관에서 보도자료가 제 이메일로 왔습니다. 보도자료란 우리 기관에서 이런이런 일을 하니, 언론을 통해서 홍보를 했으면 한다고 해서 그것을 의뢰하는 기관에서 작성한 문서를 말합니다.
골자를 보니 오늘 제가 있고, 여러분이 있는 xxx박물관에서 이곳 xxx고등학교와 MOU, 그러니깐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MOU는 단순히 폼을 내기 위한 계약이 아니니, 이런 계약을 통해 xxx박물관과 xx고가 무엇을 하기로 했는가 하는 이른바 ‘실천강령’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한데 그 내용인즉 이번 MOU에 따라 두 기관은 인턴십을 비롯한 고교생의 자기주도적 박물관 현장체험을 기획·장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주도적 박물관 현장체험’이라...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데 그 내용을 더 살펴보니 내용인즉 오는 12월까지 9차례에 걸쳐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 체험 및 강연을 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거겠지요? 한마디로 박물관으로 여러분을 내몰아 박물관이 어떤 곳이다...뭐 이런 걸 체험케 하겠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로서는 참말로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같은 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박물관이란 곳이 있는 줄로 몰랐습니다.
제 고향은 경북 김천시입니다. 김천이라는 곳이 경상북도에서는 대구 다음으로 市로 승격된 유서 깊은 도시인데도 지금까지도 박물관이라는 시설이라고는 직지사라는 거찰의 부속시설 중 하나로 최근에 문을 연 ‘직지사 성보박물관’밖에 없습니다.
박물관 견학과 같은 이른바 문화체험을 제 세대는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요즘도 이른바 ‘야자’라고 해서 야간자율학습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고교 학창시절은 정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군대도 가게 되시겠지만 군대시절보다 더 회고하기 싫은 시절이 고교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지 못한 좋은 경험을 여러분은 한다고 해서, 그리고 저는 어린 시절에 경험하지 못한 박물관이라는 시설을 맛본다 해서 그것이 곧 축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학여행가서 기계적으로 들르는 박물관, 필요없습니다.
그런 박물관 견학을 박물관 운영자들은 “와, 관람객 숫자 늘어난다” 해서 쌍수 들어 반길 줄 모르지만 저는 반기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고교시절이나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에 강제로라도 박물관이나 경주 같은 곳을 체험하는 것이 하지 않음보다 낫다고 하기도 하지만, 저는 결코 낫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오늘 이 자리에 도살장 개 끌리듯 따라 나선 듯 한 분이 있을 줄로 압니다. 제 학창시절을 견주어 생각한다면 아마도 이 부류가 절대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그런 반면에 저하고는 세대가 달라 “아니다”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혹은 “나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외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 좋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오게 된 동기나 계기가 무엇이건, 이런 박물관이나 혹은 기타 이른바 문화유산으로 분류할 수 있는 곳, 예컨대 경주의 무수한 무덤과 불국사와 황룡사 터와 같은 역사유적지라든가, 혹은 그러한 곳의 지하에서 어느 날 난데없이 나온 유물은 언제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이 땅 한반도를 터전으로 살고 사람들과 또한 그들의 터전이었을 ‘자연’은 우리가 체험하고 공감하며 서로 교류하는 장(場)입니다. 그들은 강제로 떠밀려서 억지로 “사랑하라”고 협박하는 대상이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오늘 이 짧은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주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이 자리에 섰지만, 이번 기회를 빌려 여러분이 생각하는 박물관, 유적지, 유물을 들어 배우고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만은 드리고 싶습니다.
즐기십시오. 호흡하십시오. 저 박물관 유리창 안에 갇힌 저 토기 조각 하나에도 어쩌면 여러분의 아버지 할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보다 수십 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분들이 남긴 숨결을 호흡하십시오. 나아가 저것을 만들었을 장인이 어쩌면 우리의 직접 할머니 할아버지일 지도 모릅니다.
무심히 버려졌다가 수천 년, 혹은 수백 년이 지나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은 어쩌면 기적입니다. 모세의 기적보다 더한 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 몇 십 배 몇 곱절이나 되는 기적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무심한 토기 조각에서는 더러 지문이 보이기도 합니다. 장인의 지문이겠지요. 어떻게 그것이 남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부러 남기겠다고 해서 남겼을지도 모르고, 무심히 실수를 해서 남긴 흔적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토기 제작자가 돈을 떼먹어서 골탕 먹인다고 꾹 누른 자국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토기에서는 볍씨가 박혀 있거나 박혔던 흔적도 발견합니다. 그런 볍씨가 왜 들어갔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토기 재료인 진흙을 이길 때, 민들레 홀씨처럼 볍씨가 날아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역시 토기 제작자 골탕 먹이겠다고 일부러 넣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건 그런 볍씨를 분석하면 그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대에 어떤 벼 품종을 재배했는지를 알 수가 있고 실제 그런 식으로 고고학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 토기가 만약 신석기시대 어느 시기에 속한다고 하면, 우리는 벼농사의 시작을 적어도 그 시대, 혹은 그 이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문이 조상의 직접 숨결이라면, 볍씨는 그런 지문을 남긴 조상들의 간접 숨결입니다. 그 볍씨가 있어 그것을 식량으로 삼아 혹독한 겨울을 넘겼을 수도 있으니,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근간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박물관은 이런 곳이요, 유물이란 이런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을 고고학이라 하고, 토기나 그것의 발전 형태인 청자나 백자 같은 도자기를 전문으로 한다 해서 도자학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런 토기를 미각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미술사, 혹은 미학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다시 그 토기를 어떤 가마에서 몇 도로 구웠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인간에 대한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합니다. 역사학은 그런 인문학의 한 부류이며 그런 까닭에 인간에 대한 학문입니다.
하지만 역사학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곳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예컨대 여러분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서 나오는 구한말과 식민강점기의 언론인이요 지사이며 독립투사인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이는 역사를 ‘我와 非我의 투쟁’이라고 규정했습니다만, 이것은 그 시대 상황이 그런 역사를 단재에게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에도 투쟁을 근간으로 하는 역사학이 여전히 우리 사회 일각에 살아있기는 합니다만, 개 발에 편자 같은 느낌이 나는 까닭은 우리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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