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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

고려사절요 강감찬 졸기卒記, 그 고고학적 중요성에 대하여

by taeshik.kim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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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22년 8월

(이달에) 강감찬이 졸했다. 

○시중侍中으로 치사致仕한 강감찬姜邯贊이 졸했다. 강감찬은 금주衿州 사람으로 성품이 청렴하여 살림을 돌보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기묘한 계략이 많았다.

체격과 용모가 작고 초라했으며 의복은 때가 끼고 해져 보통사람[中人]과 다를 바 없었으나, 엄정한 안색으로 조정에 서서 큰일에 임할 때마다 위대한 계책을 결정하며 굳건하게 나라의 기둥과 주춧돌이 되었다.

나이 70세가 되자 궤장几杖을 하사하고 3일에 한 번 조정에 나오도록 했지만, 결국 사직하고 도성 남쪽 별장으로 돌아갔다.

84세에 사망하니, 〈왕이〉 애도하면서 부의賻儀를 매우 후하게 보내주었고, 시호를 인헌仁憲이라고 하였으며, 백관에게 명하여 장례에 참례하도록 하였다. 현종顯宗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사신史臣은 논평한다

“두텁도다, 하늘이 이 민民을 사랑하심이여. 국가에 장차 재앙[禍敗]이 닥쳐오려고 하면 반드시 세상에 이름난 현자를 낳아 대비하시는구나. 기유년(1009)과 경술년(1010)에 역신逆臣들이 변란을 꾸미고 강대한 적이 침입해 와서 안팎이 어지럽고 혼란해져 나라의 운명[國步]이 위급해졌는데, 이때에 강공姜公이 없었다면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을지 알 수가 없다.

공은 들어와서는 모의에 참여하고 나가서는 정벌을 담당하며 재앙과 변란을 평정하고 삼한三韓을 회복하여 이로써 종묘·사직社稷과 생민들이 영원히 힘입도록 하였으니, 하늘이 낳으신 자를 통하여 이 사람들의 재앙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겠는가.

아아, 성대하도다. 세상에 전하기를, ‘한 사신使臣이 밤중에 시흥군始興郡에 들어왔는데 큰 별이 인가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전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마침 그 집의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사신이 마음속으로 이를 기이하게 여겨 데리고 돌아와 길렀으니, 그가 바로 강감찬이었다.

후에 송宋의 사신이 그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내려가 절하며 말하기를, ‘문곡성文曲星이 보이지 않은지가 오래되었는데, 지금 여기에 있구나.’라고 하였다.’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황당한 것 같지만, 부설傅說은 기수箕宿와 미수尾宿의 정기를 받았고 신백申伯과 보후甫侯는 숭악崧岳이 강신한 바였으니, 유독 강감찬에 대해서만 어찌 의심하겠는가.”라고 하였다.

 

 

○侍中致仕姜邯贊卒. 邯贊衿州人. 性淸儉, 不營產業, 少好學, 多奇略. 體貌矮陋, 衣裳垢弊, 不踰中人, 正色立朝, 臨大事, 決大策, 矻然爲邦家柱石. 年七十, 賜几杖, 三日一朝, 遂辭職, 歸城南別墅. 卒年八十四, 弔誄賻贈甚厚, 諡仁憲, 命百官會葬. 配享顯宗廟庭. 


史臣曰, “甚矣, 天之仁愛斯民也. 國家將有禍敗之來, 必生名世之賢, 爲之備. 當己酉庚戌之歲, 逆臣構亂, 强敵來侵, 內訌外亂, 國步危急, 于斯時也, 不有姜公, 未知將何以爲國也. 公入參謀議, 出掌征伐, 平定禍亂, 克復三韓, 以爲宗社生民之永賴, 非天之所生以備斯人之禍者, 其孰能與於斯乎. 嗚呼, 盛哉. 世傳, “有一使臣夜入始興郡, 見大星隕于人家, 遣吏往視之, 適其家婦生男. 使臣心異之, 取歸以養, 是爲邯贊. 後宋使見之, 不覺下拜曰, ‘文曲星不見, 久矣, 今在此.’” 是說似涉荒唐, 然傅說爲箕尾之精, 申甫維崧岳之降, 獨於邯贊, 何疑乎.”

***

 

보이는가? 내가 매양 하는 부의품과 장송 의례가?

84세에 사망하니, 왕이 애도하면서 부의賻儀를 매우 후하게 내리고 백관에게 명하여 장례에 참례하도록 했다는 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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