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내 이름으로 나간 모든 기사, 혹은 내가 내보낸 모든 기사가 저에 해당한다 자신할 수는 없으며 개중에선 부끄러운 기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에 어느 정도 사명감이 생기고 나서는 내 이름단 모든 기사, 내가 내보낸 그 어떤 기사도 오직 저 믿음 하나는 확고했으니 적어도 내 기사에 관한 한 나는 사초史草를 쓴다는 자세로 임했다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기사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논문 같다는 말도 들었으며 장황하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 기사가 당대를 증언하는 제일급 사초여야 한다는 생각 단 한 번도 저버린 적 없고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흘러도 김태식이 쓴 기사는 믿을 수 있다는 그 일념 하나로 달렸다.
내 기사는 그 어떤 학술논문에서도 참고문헌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 무수히 베껴갔다. 베껴가면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그걸로 단 한 번도 내가 법적으로 문제삼지 아니한 까닭은 그걸로 내 역할은 충분히 했다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서 오판 오류가 왜 없겠는가? 성급함에서 비롯했을 수도 있고 그땐 내가 아는 범위가 그것밖에 되지 않은 까닭에 말미암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기사라 해서 단순히 팩트 전달을 벗어나 신설을 소개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일반에는 흥미와 생소를, 이른바 학계에는 발분을 촉구하고 싶었다.
내가 매양 말하지만 이 분야에서 나보다 명석한 사람 몇 보지 못했다.
이런 자신감이 경멸과 무시를 낳았음을 나는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존중한 것은 진득한 엉덩이였고 치열한 고민이었으며 좌고우면하지 않는 성실성이었으니 이런 사람은 내가 버선발로 맞았으며 밥먹다가도 맨발로 튀어나가 추앙했다.
쥐뿔도 없으면서 구닥다리 얄팍한 지식 부여잡고 교수입네 박사입네 하는 놈들은 인간취급하지 않았다. 이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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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이 말하는 김태식] (2) 용 꼬리 될지언정 뱀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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