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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나는 왜 연합뉴스를 떠나는가?

by taeshik.kim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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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접 발단 : 연합뉴스의 곤경과 어찌할 수 없는 희망퇴직제 

퇴직키로 했다 공개하니, 애꿎은 김충배한테 몇몇 지인이 사정을 캐묻는 모양이나, 그러지 말았음 싶은 마음에 몇 자 긁적거려둔다.

혹 내가 무슨 불미한 일에 휘말려 짤리는 게 아닌가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망시켜 미안하다만 그와는 전연 거리가 멀다. 

퇴직 결정이 느닷없는 치기가 아님은 혹 지난 몇 달간 내 관련 글들을 읽은 분들은 눈치채셨을 줄로 알거니와, 결심이 선지는 오래되었다. 

1993년 1월 1일, 연합통신에 입사한 내가 이번 달로 입사 만 30년 10개월이라, 그 어중간에 해직 혹은 해고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기자 생활, 더욱 엄밀히는 연합뉴스라는 제도권 언론의 기자로서는 내가 더는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한지는 오래되었고, 그래서 차일피일 기회를 엿보게 되었던 것이며,

이것이 회사로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곤경에 처한 이 공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희망퇴직제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는 극단으로 내몰리게 되었으니,

나로서는 기회가 왔으므로, 희망퇴직 실시 공고가 나자마자 한 치 망설임 없이 희망퇴직원을 제출하고는 곧바로 남은 휴가를 다 쑤셔박아 말년 휴가를 시작했다. 

요식이라 보지만, 심사라는 절차를 거쳐 10월 16일자인가로 나는 공식 퇴직 처리가 되는데, 그때까지 회사 나갈 일은 없다.

환송 꽃다발 증정한다 해서 그것까지 거부하기는 매몰찬 듯해서, 나가서 잠깐 인사하고 돌아서면 끝이다. 

 
2. 진짜 이유 : 환멸 
 
앞선 글에서 암시했듯이 내가 정년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떠나고자 한 이유는 환멸이다. 이 생활 너무 오래하는 바람에 타성에 젖은 것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이 생활이 지긋지긋했다.

30년을 넘어선 올들어서는 만사가 더 지긋지긋했다. 모든 일에 환멸이 일었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반드시 떠나기로 했던 것이며, 그 결행 시기를 실은 내년 상반기로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앞서 말한 저 희망퇴직제가 그 결행시기는 조금 더 앞당겨 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 희망퇴직제는 나로서는 울고 싶은 데 뺨을 때려준 격이다. 그래서 서슴없이 퇴직원을 제출했다.

그 공고가 붙자마자 던지고는 나는 전국 주유에 나섰다.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아마 이번에 희망퇴직원을 던진 1호일 것이다. 

던지고서는 아버지를 뵈지 않을 수 없어 곧바로 김천으로 달려갔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마침 제철인 소분을 하며 아버지 저 이젠 정리합니다고 말씀드렸다. 

던지고 나니 30년 앓은 체증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래저래 미운정고운정 다 든 이 생활에 어찌 감회가 없을 수는 있겠는가? 

그러면서 말년 휴가 가기 전날 일부러 나는 회사 주변을 돌며 또 옥상에 올라 주변 풍경을 담았다. 그때는 소문 나기 전이라 그 주말에 몰래 아들놈 데리고 차를 몰고 가서 짐을 뺐다. 아들놈 데리고 간 딴 이유도 있다.

공장 내외부에서는 내가 퇴직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저 친구는 전문성이 있으니 갈 데가 많을 테고, 그러니 저리 했겠지 한다. 실상은 개털이라 해 둔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려는지는 다음호에서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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