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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해직에서 비롯한 문화부장이라는 자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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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얘기했듯이 해직 무렵 문화부 문화재 담당기자라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전국부로 발령나면서 가뜩이나 기자질에 환멸이 일면서, 그리고 복직소송을 진행하면서 다시는 내가 현장 기자로 돌아가지는 않겠다 스스로 다짐했거니와

그런 내가 막상 2년 만에 복직이 되어서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전문기자를 나는 허울뿐이라고 계속 말하는데 막상 그 허울을 벗고나면 진짜로 갈 데가 없다. 용처가 하나로 고정되는 까닭이다.

현장 기자는 안 한다 했지, 또 복직한 마당에 정권도 바뀌고 나를 쫓아낸 경영진도 물갈이가 된 마당에 회사로서도 나를 배려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배려가 거창한 것도 아니어서 너 어디 가고 싶으냐 해서 들어보고 웬간하면 들어주는 일을 말한다.

내가 딱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어찌했으면 좋겠냐 물어왔으니 당연히 내가 본래 자리, 곧 문화재 전문기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줄 알고는 원하면 보내주겠다 했으나 그건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었으니 갈 자리는 자동으로 문화부장으로 낙착된 셈이 되었다.

나는 보직 이 딴 데는 관심없다. 남들이야 그거 하지 못해 환장하더라만 내가 왜 그 딴 걸 한단 말인가?

타이틀? 웃기는 얘기다.

난 부장이고 단장이고 나발이고, 또 무슨 공직이고 하는 그딴 거 쳐다보지도 않는다.

다만 그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고 말았으니, 전문기자 혹은 현장기자를 버리고선 내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건성건성했다? 이는 모독이다. 내가 맡은 자리는 물불 안가리고 잘하려 했다. 그 평가야 다른 사람들 몫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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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회부에 있다 문화부 문화재 학술 담당 기자로 전근한 1998년 12월 당시 다른 언론사 문화재 분야 기자들을 보면 조선일보 신형준 한국일보 서사봉 경향신문 최정훈 동아일보 이광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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