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합격하고서도 벼슬을 오래도록 얻지 못하고, 기껏 얻은 지방관 자리도 떼여 끼니를 거를 정도로 고생하던 우리의 이규보 선생이 드디어 6품 참상관參上官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마흔여덟 되던 고종 2년(1215)의 일이었다.
그는 그때 임금에게 정사의 잘잘못을 고하는 우정언右正言 자리에 오른다. 쉰이 다 되어 정언 자리냐고 수군대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규보는 별로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한껏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이때 지은 시 중에는 얼룩무늬 아롱진 서대犀帶, 곧 무소뿔 허리띠를 두고 지은 시가 전해진다. 서대는 아무나 못 매는 허리띠였다. 오죽하면 의종毅宗 임금 때, 그가 총애하는 환관에게 서대를 하사했다가 관료들이 집단 사퇴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던 일이 있었을까.
이규보도 그저 바라만 보던 서대를 허리에 차게 되니 어찌나 뽐내고 싶었던지, 그 감동을 시로 이렇게 남겼다.
너를 바라본 게 며칠이나 되었는가
때가 되어 이 몸에도 이르렀도다
앞에서 보면 별 차이가 없지만
뒤는 반짝이니 다른 사람이 되었도다
등에 있는 얼룩무늬 보지 못함 아까워
허리에 두른 가죽띠 자주 치켜올린다
연달아 마주치는 말에서 내리는 이
평소와 달라졌음 비로소 알겠구나
-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 고율시, "처음 서대를 두르고 짓다"
이 시는 고려 관료들의 허리띠가 조선시대 각대角帶와는 달랐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오늘날의 혁대처럼 가죽으로 만들어 허리에 맞게 띨 수 있도록 했고, 그 가죽띠 위에 장식을 붙였는데 특히 주인의 지위를 가리키는 무소뿔은 뒷부분에만 붙였던 모양이다.
거 참 나도 보고 싶은데 볼 수는 없으니, 괜히 허리띠를 추켜올려 남들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우리의 이규보 선생,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자네, 나를 모른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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