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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남들 다 해먹고 박물관장 막차 탄 최순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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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증폭 지긴다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는 같은 개성 출신으로 같은 우현 고유섭을 사사했다 하지만, 나란히 1918년생인 황수영 진홍섭보다 두 살이 많다.

더구나 황과 진 두 사람이 비교적 일찍 학계 교수로 튄 것과는 달리 끝까지 박물관을 지켰으니, 태평양전쟁 말기 박물관에 발을 디딘 이래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국립중앙박물관장직을 퇴사한 시점이 1984년 12월 1일이요, 그가 사망한 시점은 그보다 보름 뒤인 같은달 16일이다.

사임 시점 문공부 장관 이진희랑 한 판 붙었다는데, 그 충격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저 3인방 중 진홍섭은 국립박물관 산하 경주박물관장(실은 분관장)을 하다가 1963년에 이화여대로 튀었다. 학계에는 비교적 늦게 진출했다. 

최순우 이력을 보면 1943년 고유섭이 관장으로 있던 개성부립박물관에 취직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확한 신분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임시직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데, 이런 그에게 해방은 절호의 기회였다.

신분이 왕청나게 바뀌기 때문이다. 

흔히 초대 관장으로 물경 25년을 독재한 김재원을 한국박물관 아버지처럼 말하지만, 그는 해방정국 혼란한 틈을 타서 지 마음대로 박물관으로 쳐들어가서 오늘부터 내꺼! 선언하고 이리저리 미군정과 작업해서 관장으로 눌러앉은 케이스이며, 그 전에 이렇다 할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인연도 없었다. 

해방 당시 이 박물관에 이홍직과 최순우 김원룡 임청 등등이 있었으니 이들이 주인에 가까웠다.

해방이 되자마자 개성부립박물관 임시직이었을 최순우는 느닷없이 승급이 이뤄져 아마 그 무렵에 학예연구관이 되지 않았는가 싶은데, 얼마 안 있어 어차피 사람도 없으니 미술과장인가 되어 물경 25년인가 같은 자리를 지키는 진기록을 세운다. 



역시 ai 증폭



역대 국립(중앙)박물관장 명단과 재임 기간을 본다. 

초대 김재원(金載元)
1949년 12월 12일 ~ 1970년 05월 01일
보성전문학교 교수

2대 김원용(金元龍)
1970년 05월 01일 ~ 1971년 09월 01일
서울대학교 교수

3대 황수영(黃壽永)
1971년 09월 01일 ~ 1974년 06월 01일
동국대학교 교수

*** 이상은 국립박물관장. 1972년 07월 01일자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생김으로써 그 장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바뀐다. 황수영은 마지막 국립박물관장이면서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4대 최순우(崔淳雨)
1974년 06월 01일 ~ 1984년 12월 01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이 명단을 보면 최순우는 복장이 터졌을 것이라는 상념이 든다. 왜?
후배 혹은 자신이 부하로 거느린 친구들이 어느날 느닷없이 자기 상관이랍시며 관장으로 내려 꽂혔으니 얼마나 열이 받겠는가? 

김원룡? 부하였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생기면서 그 교수로 가더니만 그건 좋은데 서울대 교수랍시고 느닷없이 박물관장으로 내려 꽂히니 이게 뭔가? 

것도 좋다. 겨우 1년 버틴 김원룡이 날아가자 이번엔 황수영이 오네? 어랏? 나보다 두 살이 적은데? 같은 우현 산하에서 같이 사숙했는데? 니가 관장? 얼마나 열불 나겠는가? 

최순우가 이렇게 계속 밀린 까닭은 딴 게 없다.

학력 때문이었다. 그는 보통학교, 그러니깐 국졸이었다. 미술사는 혼자서, 우현을 사숙하며 배웠다. 

맨땅에서 헤딩하며 큰 이런 사람들 특징이 있다. 

첫째, 사람을 열라 많이 모은다. 둘째 가방끈 긴 놈들들 엿먹으라고 글을 열라 많이 쓴다. 

최순우가 딱 그랬다. 

그가 남긴 글을 보면 아예 순한문으로 쓴 글도 있다. 왜? 간단하다. 니들은 이런 한문 글 못쓰제? 딱 이 엿먹이기였다. 

최순우는 사람을 엄청나게 모았다. 그의 미술과장실은 사람들으로 넘쳐났다. 그곳은 사랑방이었고 그래서 그곳을 중심으로 최순우는 문화권력을 만들어갔다. 

각종 정부위원직이라는 위원직은 주는 대로 다 받아갔다. 왜? 최순우를 받침하는 힘이 바로 그런 자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순우는 다르다. 다른 여타 가방끈 긴 문화계 인사들보다 더욱 처절하게 살았다.

맨주먹으로 일어난 사람은 처절함을 버리면 죽는다.

그 처절함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죽은 이유는 딴 게 없다.

살아갈 이유를 상실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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