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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내가 본 박경식] (1) 스승, 죽어야 눈물을 받는 존재

by taeshik.kim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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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이라 해서 요새 유별나게 다를 건 없다. 초저녁 잠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바람에 저녁 약속은 되도록이면 잡지 않지만 어제 금요일 저녁은 조금 달라 피치 못할 사정이, 그것도 두 개가 겹쳤으니, 천만다행으로 같은 강남 권역이 약속장소였고 시작 시간이 두어 시간 격차를 두어 결론으로만 보면 그 두 개 일정을 그런대로 다 소화하기는 했다. 




문제는 5시30분 신사역 인근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시작한 인암仁巖 박경식 교수 정년퇴임 기념논총 봉정식이었으니, 저 두 권으로 구성한 논총집이 고역 중의 고역이라, 박 교수 기간 발표논문을 박박 긁어 총서로 기획한 《한국 석조미술 연구》가 1050쪽, 주변 지인 회고담과 제자들 논문으로 구성한 《박경식 그리고 한국고고미술》이 540쪽에 달하는 거질이었으니

학연문화사에서 찍은 이 논총이 석면 종이를 써서 얼마나 무거운지, 대포와도 같은 저 무거운 걸 받아들고서는 두 번째 행사장으로 날아야했거니와, 어젯밤이 오죽이나 더웠는가? 가뜩이나 그 무거운 사진기 가방을 매고선, 반정장 차림에 저걸 들고선 두 번째 행사장인 송파 석촌동고분군 현장으로 날았는데, 열대야까지 겹친 어젯밤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으니, 이 모든 고역이 학연문화사 권혁재 때문이라고 적기해 둔다. 


권혁재가 제조한 흉기



기왕 기념논총 만들 거, 재생 용지 써서 좀 가볍게 해달라 하고 싶다. 다만 어제는 좋은 자리라 이젠 나이가 좀 많아졌다 해서 헤드테이블 바로 다음 테이블 앉은 권 옹한테는 불만을 쏟지는 아니했다고 밝혀둔다. 

박 옹은 2022년 7월에 단국대를 정년퇴임했다. 그 퇴임기념식이 없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1년이 지나 느닷없이 홍대한 군을 통해 이런저런 전차로 이런저런 때에 기념식이 있으니 왕림해주십사 운운하는 연락이 왔기에 대뜸, 그런 게 있는데 지금 연락한단 말이냐? 하는 핀잔부터 쏟아부었으니 

통상 저와 같은 봉정 기념 논총에는 그 주인공과 얽힌 회고담이라든가, 그것이 아니라 해도 저 정도 인연이면 당연히 논고 하나 투고하는 일을 마다 않을 처지인데, 지들끼리 다 하고 그런 자리에 나와서 쪽수만 맞춰달라는 듯해서 던진 불만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다른 이유로 그리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만큰 박 교수와의 인연은 질기다. 

통상 저런 자리가 그렇듯이 주인공은 헤드테이블에 백발 완연한 모습으로 앉아 그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념영상을 함께 감상하고 했으니, 어부인과 딸, 며느리(아들놈은 애 본다는 핑계로 다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정좌하셨으니, 마침내 주인공을 모셔 감회를 듣는 시간이 되었으니

박 옹은 시종일관 정영호 선생 이야기만 했다. 진전사지 조사할 때만 해도 선생이 뭐하시는 분인지 몰랐다느니 블라블라 스승님 모시고, 은사님 은혜가 하해와 같아 블라블라 첨부터 끝까지 정영호 선생 이야기였으니, 연단을 내려오기 직전에는 목이 잠기고 눈가가 촉촉해졌으니, 감정이 북받쳤으리라 생각해 본다. 


논문집에 실린 첫장 사진. 황수영 선생 구순 잔치 때 정영호 선생과 한 컷이다.



이런 일을 이미 앞서 겪은 단국대 사학과 선배 장준식 선생은 역시 훈수의 달인이라, 축사인 자격으로 맨처음 다음 타석을 이어받아 하는 말이 박 교수가 반드시 감사드려야 할 분 중에 가장 중요한 분을 빠뜨렸다면서, 그 분들이 바로 박교수님 부모님이며, 특히 이 자리에 오신 어머니라고 했으니, 하긴 그러고 보니 정영호 선생 이야기하다 그만 이 부분을 빼먹기는 했더라. 

나는 헤드라인 테이블 중 한 쪽 귀퉁이에 신창수 선생, 그리고 단국대 사학교 교수진 동료들인 김문식 전덕재 선생 등등과 앉아 있었으니 정영호 선생 운운하는 대목들을 지긋이 듣다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진실을 폭로하고 말았으니

"아버지랑 선생은 죽어야 눈물을 받는 존재다. 저 말 들으면 시종일관 정영호 선생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른 듯하지만 거짓말이다. 얼마나 곡절이 많았는 줄 아는가? 이래서 나는 실록을 안 믿는다. 실록은 거짓말이다." 

했다. 

1995년인가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된 박 옹한테 정영호 선생은 잊을 수 없는 스승이라는 사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변함이 없고, 또 저 자리에 저를 심은 사람도 정 선생이라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스승의 꼭두각시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때인가부터 뛰어넘어야 하는 거대한 벽이기도 했으니, 그것들을 절감하던 순간부터가 실은 박 옹이 무척이나 힘든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정영호 선생은 단국대 절대 권력인 장충식 이사장과는 절친 중의 절친이며, 같은 손보기 선생 제자들이다. 따라서 정영호 선생과 사이가 틀어진다는 말은 곧 장충식 이사장한테는 반기를 드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길어져서 시리즈로 끊는다. 참고로 박 옹한테는 일러바치지 마라!!! 절필 압력 들어온다!!! 이게 다 회고담 한 코너 안 준 데 대한 분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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