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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보스만 판결과 메이저리그 총파업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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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눈엔 기자로서의 김태식이라고 하면, 대뜸 문화재를 떠올리겠지만, 23년에 이르는 기자 생활 기간 중 문화재 기자 생활은 17년에 지나지 않는다.

1993년 1월 1일,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기자로 입사하는 나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 98년 12월 1일 문화부로 발령났다. 문화부 이전 나는 부산지사와 체육부, 그리고 사회부를 거쳤다.

체육부는 내 기억에 정확치는 않으나, 94년 7월 1일에 발령나서 96년 11월 30일까지 일했을 것이다. 대략 2년 반이라 치자. 이후 나는 사회부로 갔으니깐.

체육부에서는 제대로 해 본 것 없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으니, 야구와 축구도 해 봤다. 당시만 해도 외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체육 관련 외신은 국제부가 아니라 체육부에서 별도로 처리했다.

축구와 야구 중 내 체육부 기자 생활 중 유독 기억에 남은 두 해외 스포츠 관련 사건이 있으니, 하나는 유럽 프로축구계를 당타한  보스만 판결(Bosman ruling)이고, 다른 하나는 1994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 총파업 사건이다.


European Court of Justice



이 중 후자는 각 구단이 도입한 연봉 상한체도, 소위 샐러리 캡(salary cap)이 촉발했으니, 이 제도는 구단이 구단별 선수 연봉 총액을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소속 선수 연봉을 책정토록 한 것이었다.

이에 당연히 선수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사태는 선수노조가 파업을 결의하고 경기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를 빚어 그해 시즌이 취소되고 당연히 월드시리즈도 없었다.

보스만 판결은 간단히 말해 축구 선수의 자유이적 권리를 선언한 축구계의 위대한 권리장전이다.

1995년 12월 15일, 유럽사법재판소는 '계약이 끝난 선수는 구단 동의와 이적료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팀을 옮길 수 있고, 팀내 외국인 선수 숫자는 제한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로 유럽 축구계는 요동쳤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관련 위키피디아 한글 사전을 전재하는 수준에서 본다.

1990년, 벨기에 주필러 리그 소속 축구 선수 장 마르크 보스만(Jean-Marc Bosman)이 소속팀인 RFC 리에주(RFC Liège)에서 프랑스 리그 됭케르크(Dunkerque)로 이적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됭케르크는 리에주에 충분한 이적료를 지불하지 못했고 보스만 자신도 외국선수 쿼터제 등의 규정에 묶이자 리에주는 그의 이적을 불허했다. 또한 그는 리에주에서 더 이상 1군 선수가 아니었기에 그의 봉급 또한 감소했다.

이에 보스만은 FIFA 선수들에게 불리한 이적 규정 17조에 대해 룩셈부르크에 있는 유럽사법재판소에 소송을 내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마침내 승소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이 규정이 유럽연합 회원국 근로자들에 대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로마 조약 39조를 위배한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보스만을 비롯한 유럽 연합 회원국 국적을 가진 축구 선수들은 계약 만료 이후 그들이 유럽 연합 회원국 축구 클럽에서 다른 유럽 연합 회원국의 축구 클럽으로 이적할 때 자유로운 이적에 관한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나아가 외국인 쿼터제도 폐지됐다.

판결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

내가 이 얘기를 다소 뜬금없이 꺼내든 이유는 설악산 케이블카 불허라는 문화재위 결정을 엎어버린 행정심판의 결정이 바로 한국 문화재판에서는 보스만 판결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음 이야기는 난중에....(2017.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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