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박경식 퇴임 기념논총이라 해서 나온 제1권 《한국 석조미술 연구》를 보면 그의 업적이라 해서 오만 잡가지가 나열되는 모습을 보는데 개중 하나가 보고서라 해서, 그가 직간접으로 간여한 문화재 조사 관련 보고서-말할 것도 없어 발굴보고서가 주류를 이루지만-도 망라했으니, 그 보고서는 다시 간행기관별로 크게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와 한백문화재연구원으로 대별함을 본다.
두 기관은 모두 그가 창립을 주도하고 그 오야붕적 자리를 차지한 까닭에 그가 그런 자리를 차지하는 한, 모든 보고서 작성자 명단 맨 꼭대기엔 항상 그의 이름이 올라가기 마련이라, 저 많은 보고서를 실제로 그가 작성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두 기관은 성격이 판이하지만 계승적 관계다. 다시 말해 단국대학교라는 사립대학 부설기관으로 출범한 매장문화재연구소가 소멸하면서 그 대체자로 등장한 것이 민법상 비영리법인 한백문화재연구원이다. 둘은 보다시피 그 태생 혹은 성격으로 볼 적에 전연 계승 관계일 수는 없지만, 실제로는 그랬다.
그제 퇴임 기념식에서 박 옹은 애꿎은 정영호 선생 이야기를 계속 끄집어내면서 내 전공은 석조미술이며, 선생이 이르기를 우현 고유섭한테서 시작하고 황수영 선생을 거쳐, 정영호에 이르는 석조미술사를 자네가 계승해 줬으면 좋겠네 하고 했다지만, 그야 그 말을 내가 들은 적이 없으니 그렇다손 치고
정영호 박경식 두 사제를 이어주는 고리가 있는데 그건 바로 이들이 단 한 번도 고고학 발굴을 놓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술사가가 웬 고고학 하겠지만, 정영호 시대는 물론이고, 그 박경식 시대까지도 말이 미술사지, 잡탕 겸업이라 다 고고학을 겸직했다. 이는 건축학 역시 마찬가지라, 이것이 한국적 고고학 특질이라 할 만하다.
한국고고학 초석을 놓았다는 창산 김정기만 해도 본래 고건축학도지 고고학도가 아니며, 그를 계승한 장경호 선생이니 김동현 선생이니 하는 사람들도 다 본업은 고건축이다.
이 미술사 고건축학도들 하는 얘기가 아주 재밌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이들 스스로가 단 한 번도 나는 고고학도라 한 적은 없고, 언제나 나는 건축학도 나는 미술사학도라를 말만 벤딩머신처럼 되뇌인다는 점이다. 실제 내가 봐서는 고고학이 본업인데도 말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여유가 되면 따로 한번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로대, 정영호가 대표하는 미술사학이 계속 힘을 유지한 비결 중 하나가 고고학 겸업이었다. 그랬다. 정영호나 박경식이 고고학을 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박경식이 단국대 사학과 후배 서영일과 짝짜꿍해서 단국대에다가 매장문화재연구소를 차리기는 1998년이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당시가 고고학 발굴 호황기였고, 발굴을 할 만한 민간기관이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학교랑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다 할 수 있는데, 아무튼 이렇게 해서 저 무렵 매장문화재연구소가 출범했다.
당시 초창기 설립 멤버로 현재까지 한백문화재연구원에 남아있는 이로는 방유리 정도가 있으며 일부 고참 조사원도 그렇지 않은가 한다.
1998년이면 내가 문화재 업계에 투신한 시기다. 간단히 말해 내가 저 지긋지긋한 단국대 사단과 인연을 지니기 시작한 내력이 저때란 뜻이다.
이 매장문화재연구소는 잘 나갔다. 개중에서도 경기지역, 특히 경기 북부지역 산성 발굴은 한동안 독식하다시피 했다. 다 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 그랬다. 다 말아드셨다. 이는 발굴보고서 목록만 봐도 그 독식 잡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렇게 잘 나가던 매장문화재연구소도 2005년 무렵이 되어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대학 부설기관으로서는 더는 버텨내기 힘든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비슷한 데로 고려대 이흥종이 세운 고환경연구소도 그랬다고 기억한다.
대학이 더는 발굴을 전담하기에는 불가능한 시대, 다시 말해 이를 전담하는 비영리 민간 법인으로 가는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도 그래서 2006년 문을 닫았다. 그 주축 멤버들은 고스란히 이듬해 출범한 한백문화재연구원으로 호적을 파가게 되는데, 예서 하나 변수가 있었다. 정영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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