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 놓고선 그렇게 만든 지들 자신을 대견해 한다.
이렇게 좋은 밥상 차려놨으니 와서 드시라 한다.
하지만 손님은 없다.
왜 이럴까?
그래서 서양미술을 돌려봤다.
어랏? 오지 말라 해야 할 판이다.
이걸로 재미 붙인 데가 국립중앙박물관이라, 젊은이는 안 오고 투표권 박탈 논란 휘말린 뇐네 그룹과 숙제하러 강제로 학교 학원에서 끌려온 학생으로 넘쳐나던 구닥다리 국박에 서양미술은 한 줄기 빛이었다.
오 꽃의 영광이여 초원의 빛이여
우리한테도 이런 꿈 같은 날이 왔습니다. 감읍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하며 박물관에 서양미술을 접목하려 한 김영나를 향해 우리가 미술관이냐 성토하던 시선들이 머쓱해지고 말았으니 어쩔까?
박물관 입구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신 서양미술사학도 관장 김영나 현창비라도 세워야지 않겠는가?
그런가 하면 작금 한국 박물관은 이건희 팔이 한창이다.
전임 정권이 삼성그룹 압박해서 강탈한 장사 참 잘된다.
그 컬렉션이 훌륭해서인가?
내 보기엔 삼성은 기업이라 쭉정이만 내놨다.
그 쭉정이에 대중은 환장한다.
왜?
그 장사는 이건희 팔이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이라는 거대 구룹 오너가는 어떤 것들을 모았을까 하는 훔쳐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왜 사람이 몰릴까?
이 기현상에 대한 냉철한 분석도 있어야 한다.
내가 좋은 거, 우리가 좋은 거가 남들한테도 좋은 것인가는 냉철히 물어야 한다.
기간 모든 박물관 전시는 맥락과 스토리가 없는 나열이며 여기에 구찌 저기엔 에르메스 갖다 놓은 잡화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고학? 미술사?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예서 물어야 할 것은 그것이 얼마든 흥미를 유발하고 잠재성 장착한 대기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재미 있을 수 있는 것들을 재미 없게 만들었을 뿐이다.
같은 물건인데 그에다 어떤 생명력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지금 배우고 가르친 것들로는 택도 없다.
고고미술의 혁명은 그 분야 종사자가 주도권을 쥐는 한 영원히 불가능하다.
나는 그걸 저 분야 종사자들이 알기에 아득바득 그 주도권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고 본다.
왜?
쓸모없음이 폭로되는 일만큼 비참함을 주는 일 없다.
놔야 한다. 그 주인의식 버려야 한다.
세대가 바뀌어야 하고 주모자가 바뀌어야 한다.
그 바뀜에서 혁명이 일어나며 그 혁명이 있어야 지금의 주류가 외려 설 땅이 넓어진다.
언론계가 그랬다.
새로운 흐름은 기성 언론을 기뤠기로 공격하며 성장을 구가했다.
언론사는 망했지만 언론은 단군조선이래 최극성을 구가한다.
기뤠기가 넘쳐나는 세상, 돌아보니 진짜 기자는 그 기뤠기 속에 있었다.
이 흐름 거스를 수 없다.
얄팍한 지식으로 알량하게 전문가 행세하는 시대 지났다.
제아무리 잘난 놈 전문가라 해도 그 알량함 까발리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한 시대다.
한 놈 각 잡고 그 놈 해체하면 한 시간 만에 바보 만들어버린다.
무섭지 않은가?
이 시대 기성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 물음에서 돌파구는 나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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