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지난 자리엔 언제나 둥구리가 남는 법이다. 그렇다.
상록수라 해서 늘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무는 이 꼴이라, 남들이 다 떨궈낸 이파리 겨울까지 다는 일은 실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어, 소복소복 듬뿍듬뿍 내린 눈은 견딜 수 없어 마침내 저처럼 자끈둥 부러지고 마니, 저꼴이 된 나무가 어디로 가겠는가?
요새야 나무를 때는 데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때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어서 쇠죽 끓이는 신세가 되기 마련이다.
눈보단 덜하지만 비 또한 만만치는 아니해서 그 무게가 상당하다. 폭우가 지난 자리에 저와 같은 몰골이 벌어지는 까닭은 바람도 있겠지만 실은 비를 머금은 그 무게 때문이다.
덧붙여 자끈둥 중기가 두동강난 저 강릉 소나무를 보면 소나무 신화가 얼마나 허황한지를 단박에 아니, 소나무가 최고의 목재?
어떤 놈이 그딴 소리를 했는지 모르지만 헛소리 중의 상헛소리라, 소나무가 괜찮은 목재인지는 모르지만, 최고 운운하는 말은 개소리라, 저런 식으로 자끈동 부러지는 나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소나무는 저런 식으로 잘 부러지고 만다.
안익태가 남산 위 저 푸른 소나무를 읊었을 적에 실은 남산엔 소나무가 없었다. 무슨 소나무란 말인가? 나무란 나무는 죄다 베어다가 군불 데핀다 치워버렸다.
그에서 비롯한 소나무 신화는 거짓을 주물하고 오늘에 이르니 지금 이 순간에도 모름지기 정원이라면 소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동한다.
소나무 집어치고 심기도 편하고 뽑기도 편하며, 볼것도 더럽게 많은 핑크뮬리나 댑싸리 잔뜩잔뜩 심자.
폭설에 수북한 눈 잔뜩 이고진 소나무가 보기는 좋지만, 그건 고통이다.
소나무를 진정 사랑하거덜랑 폭설이 올 때면 언제나 그 밑에서 장대로 수시로 쑤셔서 눈을 털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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