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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닭을 닮은 봉황

by 초야잠필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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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의 모습은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본적이 없으니까. 용처럼 처음부터 상상의 동물이었기 때문에 봉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기술만 기록에 존재할 뿐이다. 

현존하는 사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爾雅》에 있는 郭璞의 注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雞頭、燕頷、蛇頸、龜背、魚尾、五彩色,高六尺許」。

닭머리에 제비의 턱, 뱀 목에 거북이 등짝, 물고기의 꼬리인데 오색찬란하고 높이는 6척 정도. 

6척이면 2미터 정도이니 어마어마하게 큰 새인셈이다. 어쩌면 《爾雅》에 나오는 봉이란 힌두신화의 가루다 비슷한 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봉을 묘사한 당대의 그림-조각들을 보면 예외 없이 닭 모양 비슷하게 묘사해놓았다. 

닭머리에 제비, 뱀, 거북이, 물고기를 합쳐 놓은 모양의 괴수는 어쩌면 한대에나 출현한 봉의 모습이고, 원형은 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닭이라는 것이 오늘날에는 치킨-기껏해야 단백질 공급원 정도의 대접을 받지만 실제로 닭이 처음 사육되던 시기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瑞鳥였던 셈이다. 

신라가 닭을 왜 건국신화에 들고나왔는지 그 이유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중국 상고시대의 청동기. 봉을 묘사한것 같지만 닭을 닮았다. 봉은 아마도 야생닭이거나 닭이 처음 사육되기 시작한 시기에 목격한 모습과 이미지로 인류사에 처음 출현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닭은 최초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을 때는 치킨이 아니라 상서로운 길조였던 셈이다. (촬영: 신동훈 at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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