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분시대古墳時代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주변에 묻은 하니와[埴輪] 중에 동물모양 하니와가 있다.
이 동물모양 하니와라는것이 참으로 다양하여 별의 별 동물이 다 있지만.. 눈에 띄는것은 그 중 상당수가 말, 소, 돼지, 개, 닭 등 가축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야생동물도 있다). 동물모양 하니와를 보면 여기 묘사된 가축은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라 그다지 대단할것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동물모양 하니와의 문화적 성격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부분은 여기에 묘사된 동물 중에는 당시 일본에 도입된지 얼마 안 되는 것들이 꽤 있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닭: 야요이시대 중기 이후 (통설에 의하면 서기원년 전후)
말: 4세기 말~5세기 초
소: 4세기 말~5세기 초
닭이야 그렇다 쳐도 소와 말이 4말~5초나 되어야 도입되었다고 하니 너무 늦은것 아닌가? 싶겠지만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한반도 남부지역(마한)에 대해서는 不知乘牛馬, 牛馬盡於送死라 하여 말과 소의 존재를 분명히 기록한데 대해 왜전에는 其地無牛馬虎豹羊鵲이라 하여 당시 일본 열도에는 소와 말이 없다고 분명히 기록해 놓았으니 문헌으로도 상응한 내용이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삼국지 동이전의 세계가 서기 3세기의 상황이라고 본다면 소와 말은 4말~5초에 도입되었다는 동물고고학계 추론은 대략 옳다고 본다.
일본사에서 닭과 말, 소 등 가축은 도입 당시 열도에서 성립한 정치적 권력이 이를 대륙에서 수입한 일종의 위세품-희귀품으로 주변에 과시하며 유지하고 있었던 정황이 있다.
동물모양 하니와가 일본고분에서 출현한 것은 아마 대략 서기 4세기 이후로 보는 모양인데 이 당시 대륙으로부터 새로이 수입된 가축이 일본열도에서 어떤 정치적-문화적 의미를 갖고 있었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 우리도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일본 고분의 동물모양 하니와에 묘사된 닭, 소, 말은 대륙에서 수입된지 그야말로 얼마 안되는 "최신 박래품"이었던 셈으로 당시 일본의 권력자들은 흔히 볼 수 없었던 "물건너 온" 동물의 모양을 자랑스럽게 묻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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