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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도난 당한 백제 창왕시대 사리장엄을 복원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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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일전에 한 얘기지만, 건디기가 사라졌다 해서 학계가 그 껍대기만 남았다 해서 포기해 버린 대표 유물이라, 그 방기한 자리에다가 우리는 무엇을 가져다 채워야 하는가?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은 저 속물이라, 

위선爲先, 그 모양이 우체통이라 이것이 무엇을 말함인지를 궁구해야 했으니, 그것이 바로 동시대 목관임을 하시何時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속알맹이는 어느 시점인지 도굴꾼이 쏙 빼어갔으니, 그럼에도 우리는 저 외양이 무엇을 말함인지를 물었어야 하며, 거기에서 바로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을 찾지만, 아무도 묻지 아니했다. 

왜? 이 친구들은 밥술에 밥을 떠서 먹여줘야 하니깐 말이다. 
 

 
 
왜 묻지 아니했으며, 왜 답을 찾지 못했는가?

그들은 탑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다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탑파란 무엇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무덤이다. 이 무덤이라는 평범성을 망각하니, 저 껍데기가 무엇인지 물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무덤임을 상징화하고자, 그리도 구하고자 탑파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중국이니 인도니 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이 바로 부처님 진신사리다.

사리란 무엇인가? 석가모니 부처님 유해다. 유해란 무엇인가?

그의 체취가 담긴 모든 것이다. 심지어 손톱 발톱, 그것을 태운 재도 사리로 간주되었으니, 그런 체취 어떤 것도 봉안한 무덤이 솔도파이며 탑파다. 

그런 까닭에 그 어떤 경우에도 탑파는 동시대 무덤 혹은 동시대 사당이라는 관점을 벗어날 도리가 없다.

실제 그 관점에서 바라보면 탑파라는 껍데기가 바로 봉분이요, 사리장엄을 안치하는 부분이 이른바 매장주체부이며, 사리장엄 혹은 사리장치 그 자체가 동시대 목관임을 안다. 

부여 능산리절토 목탑 자리 중앙부에서 수습한 소위 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 역시 이에서 한 치 어긋남이 없어 동시대 목관으로 기적으로 남은 무령왕과 그 왕비 목관에 대응함을 본다. 
 

 

매양 할 말 없으면 동시대 혹은 비슷한 시대 외국, 특히 중국이나 왜국 유물 가져다 놓고는 그것이 조금이라도 엇비슷하기만 하면 그것이 국제교류라 해서 그것이 뭐 대단한 발견인양 개사기를 쳐대는 어린아해 장난 같은 짓을 나도 좀 해 본다. 

 

 
 
저 창왕명 석조 백제 사리감에 안치한 사리장엄이 이런 것들 아니면 무슨 개뼉다귀란 말인가?

또 저들이 무령왕과 그 부부 목관의 그것 아니면 무슨 다른 개뼉다귀란 말인가? 

알맹이 다 사라져도, 그 사라진 자리에다가 무엇을 채울 것인가? 이걸 물었어야 하며, 그에서 바로 우리가 채우고자 하는 그 무엇을 얻게 된다. 

저 백제 사리감실 안에 안치한 사리장엄 외양은 바로 저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동시대 목관이었고, 그것은 무령왕과 무령왕비 목관 천상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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