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도전받는 근친혼, 익숙에 대한 반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1. 8.
반응형

모든 질투는 새것에 대한 반란이다. 구시대는 신시대에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라 익숙은 언제나 생소에 패배할 수밖에 없어 이를 신진대사라 한다.

장강 물결을 밀어내는 것은 같은 장강 뒷물이다. 그 뒷물도 앞물이 되어 그 뒷물에 다시 밀려난다.




지금 사랑은 언제나 새 사랑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이를 권태라 한다. 권태란 익숙에의 신물이다. 이 신물은 새것이 나타나면 밀려나기 마련이다.

지금 사랑이 울고불고 왜 날 버리느냐 철퍼덕 주저앉아봐야 소용없다. 익숙은 언제나 생소에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무수한 사랑과 집착이 새로운 것들을 향해 떠났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묵은 술은 깨끗이 비워져야 한다. 그 자리 내 자리라 해봐야 굴욕만 남을 뿐이다. 질투 시기에 밤을 지새는 자들한테 고하노니 물러나라. 깨끗이 물러나라.

새것 찾아 떠나는 년놈은 언제나 여지를 주기 마련이라 그 여지는 씨를 말려 없애야 한다. 이 여지를 버리지 못하는 데서 번민과 분노와 살육이 싹을 튀우는 법이다.

예수가 왜 지 고향에선 버림 받았겠는가? 익숙해서다. 어린시절부터 불알까지 봐서다. 이 익숙은 그 어떤 마력도 없다. 그 어떤 생기도 없다. 낯이 익어서다. 차라리 바보천치인지언정 내가 모르는 이가 나타나야 한다.

생소란 그런 것이다. 신선이란 그런 것이다. 예언자 혹은 구세주로서 예수가 지 고향에 디딜 땅은 어디에도 없었다.

화랑세기를 보면 두어 군데 근친혼을 경멸하는 논급이 보인다. 기억을 살려보면 진흥왕이 조강지처 숙명淑明을 동기간이라 해서 경멸했으니 둘은 아버지는 달랐지만 어머니는 같은 지소였다.


by 여송은



양도良圖 또한 어머니인지 아버지가 같은 누나랑 결혼하라 부모가 명령하니 애초엔 동기간이라 해서 반대한다. 나중엔 신국神國엔 신국의 道가 있다는 논리에 설득당해 결혼하고 말지만 근친혼에 대한 경멸이 있었다.

나는 애초 이런 반발을 유가윤리 침투로 봤다. 동성끼리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중국 윤리 침투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면에 지나지 않거니와 요새는 그보다는 저 익숙에 대한 인간 본연의 반발 저항심리를 주목한다.

곧 생소에의 동경이 원인이라고 본다. 같이 자라면서 이것저것 보지 않을 것까지 다 본 마당에 그런 동기간이랑 결혼까지 하고 싶겠는가?

예수가 지 고향에선 미친 놈 취급받은 원리랑 같다.

헌것은 물러나야 하는 법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