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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는 본래 한 번 쓰고는 태우거나 묻어버려야 한다.
이에 배반하는 전통이 우리네 상여집이다.
내 고향에서도 이 상여집이라는 것이 어릴 때까지 있다가 사라졌다.
이 상여는 마을 공동재산이었다.
그 상여집은 보통 동네 무미진 계곡 골짜기에다가 만들었다.
그 골짜기는 귀신 나오는 데라 해서 가는 일이 드물었다.
동네 초상이 날 때마다 이 상여집에서 상여를 꺼내어 시신을 무덤에 매장하는 데까지 옮기고는 도로 거두어 상여집에 넣었다.
조선시대가 왜 이 시스템으로 갔는가?
간단하다. 돈 때문이다.
죽을 때마다 상여를 새로 만들어 태우다 보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나아가 무덤 구조도 상여 공동재사용 재산 관리에 한 몫을 했다.
조선 무덤은 왕릉까지도 그런 상여를 시신과 함께 넣어 매장할 공간이 없었다.
무덤 자체가 그러기엔 너무 작았다.
그렇다 해서 그 주변 어딘가에다가 광을 파고 거기에 묻거나 태워버리면 될 터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왕실에서 죽어나가는 사람이 왕 혼자라면 그런 대로 이를 견딜 만하지만, 왕실에는 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 할매 다 있었다.
너무 자주 죽어나가기 때문에 조선 재정이 이를 받침할 여지가 없었다.
상여는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까닭은 재수 옴 붙는다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원칙은 상여는 한 번 쓰고 버린다. 이 원칙에 대한 저 상여집은 배신이지만, 따지보고 보면 그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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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서 발견되는 탈것은 덮어놓고 상여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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