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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동대문운동장 쓰레기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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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 재떨이까지 뜯어왔습니다"

입력 2008.06.09. 06:51 수정 2008.06.09. 10:07 댓글 0개

 

news.v.daum.net/v/20080609065111950

 

"동대문운동장 재떨이까지 뜯어왔습니다"

서울체육시설관리소 '문화재' 모두 수거(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82년 역사의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졌다. 그 터에 디자인플라자를 세우고 서울성곽을 보관하기 위해 야구장과 축구장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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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화재업계도 내가 여러번 한 말이지만, 이걸로 한국사를 쓰고 세계사를 쓴다고 했거니와, 그만큼 이 짓도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 법이라,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세사世事와 떨어질 수가 없어, 이런저런 인연을 고리로 그 바깥 세계와 충돌 혹은 조화라는 방식으로 대응하게 되거니와, 그것이 대응하면서 빚어내는 파열음이라든가 하는 것이 모조리 역사의 얼개를 구축한다는 그런 확고한 믿음이 있다. 

 

 

동대문운동장 철거하면서 쓸어담은 쓰레기들. 맨 왼편 뒷짐진 인물이 이들 자료를 보존키로 결단한 김재정 씨다. 지금은 아마 정년퇴직했을 것이다. 왼편 두번째가 당시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장 김영관 현 충북대 사학과 교수. 

 

지금은 사라진 서울 풍경으로 동대문운동장이 있다. 나 역시 이 운동장이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지기 전에는, 특히 체육부 기자 시절에는 취재라는 이름으로 더러 찾기도 했으니, 거기서 럭비 선수 출신 시인 조병화 선생을 뵙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니, 꼭 그런 인연이 아니라 해도 내가 그를 쳐다봐 준 횟수만 해도 헤아릴 수 없으리라. 그런 동대문운동장이 어느날 느닷없이 철거가 발표되고 급기야 지금은 그 흔적도 남기지 아니한 채 동대문DDP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어제 저녁, 어쩌다 작은 저녁 모임에서 동대문운동장 얘기가 나오게 되었으니, 그러다가 기억 저편에 내리꽂은 편린 하나가 스멀스멀 기어올랐으니, 저 육중한 철근콘크리트조 동대문운동장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 한 편이 그것이다. 

 

동대문운동장 철거하면서 쓸어담은 쓰레기들

 

볼짝없이 저걸 뜯어내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겠는가? 그 하나하나가 어찌 역사가 아니겠는가? 그런 쓰레기 중에서도 동대문운동장 역사 82년을 온축한 쓰레기 더미가 있었으니, 어찌된 셈인지 그 쓰레기를 온전히 다 수거해 보관 저장했다가 나중에 서울시로 고스란히 넘긴 이가 있어, 그런 사연을 저 기사는 논급한 것이다. 

 

아래 전문 첨부하는 기사에는 들어가지 않는 내용이 있으니, 저런 자료를 저런 사람이 수거해다가 놓았으며, 그 처리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말은 나는 당시 서울역사박물관 김영관 전시과장(현 충북대 사학과 교수)한테 듣고는, 나아가 그 쓰레기가 어떤 것임을 대략 듣고는 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해서 김 과장과 함께 그것들을 수거해다가 가져다 놓았다는 잠실로 갔던 것이다. 

 

서울체육시설관리소 '문화재' 모두 수거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82년 역사의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졌다. 그 터에 디자인플라자를 세우고 서울성곽을 보관하기 위해 야구장과 축구장이 이미 철거가 완료됐거나 철거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동대문운동장이 그냥 사라지지는 않았다.

 

 

동대문운동장 철거하면서 쓸어담은 쓰레기 중 재털이 



이를 무대로 펼쳐진 한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장면을 증언하는 각종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동대문운동장 운영주체인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 김재정(金在貞.52) 소장은 철거에 앞서 "유물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무조건 챙기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폐자재로 사라질 뻔한, 아니 더 정확히는 그렇게 버려도 상관없는 무수한 동대문운동장 '쓰레기' 한 트럭 분량 이상이 동대문운동장에서 잠실올림픽경기장의 보관 창고로 옮겨졌다.

이미 오래 전에 유행이 지난 TV 수상기나 도트 프린트, 풍향계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서류뭉치와 도면 자료, 걸개 그림을 비롯해 매표박스, 신문 스크랩, 그리고 재떨이까지 포함돼 있다.

동대문운동장 유물 중에서 서울역사박물관 수장고로 간 것은 간판이 유일하다.

 

동대문운동장 철거하면서 쓸어담은 쓰레기 중 일제 사이렌. 놀랍게도 돌리니 맹렬한 소리가 났다. 



마지막 동대문운동장운영사무소장을 지낸 김명중 사업소 재산관리팀장 역시 '고물 수집 취미'가 있는 데다, 자칫하다간 운동장 관련 자료가 모두 영영 사라질 것을 우려해 유물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수집하는 일을 현장 지휘했다.

김 팀장이 건진 유물 중 특히 애지중지하는 것은 휴대용 사이렌. 상표를 보니 일본산이었으며, 언뜻 그 역사가 반세기 이상은 될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고물 티가 났다.

신기한 것은 수동인 이 사이렌 손잡이를 돌렸더니 지금도 생생한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었다.

동대문운동장 '고물' 창고로 안내한 김 소장은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닥치는 대로 모아두었는데 저런 서류 뭉치 속에는 내가 봐도 귀중한 사진자료들이 많은 것을 보고는 이렇게 갖다 놓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줄곧 아마추어라고 강조했지만, 서울시 공무원으로 산하 역사박물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데다, 일본 전통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를 보고는 "이것이 바로 프랑스 인상파를 낳은 일본 미술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역사와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김재정. 이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김 소장은 "유물은 지금 당장 가치 있는 것과 미래에 가치가 있을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동대문운동장 자료들은 아마도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우리 민족은 조선말기까지만 해도 기록을 잘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지만 요즘은 기록을 너무 홀대하는 듯하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살아남은 자료 중에서 사진은 특히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 농구단 기념촬영 사진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역임한 한국체육계의 거물이자 한국 사회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고 이상백 박사가 선수로 들어가 있었다.

또 이범석 장군 영결식 장면을 담은 사진도 발견됐다.

 

 

제3회 전조선축구대회 불교청년회 우승 기념사진. 이 사진도 혹 저때 수거한 쓰레기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데 이 대목은 자신이 없다. 



김 소장은 "동대문운동장은 1920년대에는 그냥 운동장만 있었을 뿐이고 스탠드와 같은 주변 시설은 1950년에 지었다"면서 "당시만 해도 공공행사를 치를 만한 장소가 얼마되지 않은 까닭에 동대문운동장이 그런 곳으로 자주 이용됐으며, 이 사진들은 아마도 그 과정에서 촬영된 것일 듯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김 소장이 긁어모은 동대문운동장 '유물'은 조만간 청계천문화관이 일제 조사를 벌여 유물로 등록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경성운동장 야구장 관중석. 이 사진도 쓰레기에서 찾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데 자신은 없다. 

 

이 기사가 이들 쓰레기 처리에 대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이후 전개과정을 지켜보지는 아니했으니깐 말이다. 썩 보람은 없지는 않았으리라 나 스스로를 자위해 본다. 

 

이후 들으니, 서울역사박물관인지 아니면 그 산하 박물관인지 한군데로 다 유물 등록되고, 특별전인가도 했는지 아니했는지는 확실치 아니하나 조사보고서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자칫하면 영원히 매몰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동대문역사가, 아니, 서울역사가, 아니, 대한민국 역사가, 아니 세계사 여러 단면이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으니 기적이라 해야지 않겠는가? 

 

버려도 되고, 버려야 당연한 저런 자료들을 수거하고 그걸 지어나 나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지시를 내린 김재정을 망각할 수는 없다. 

 

내가 다시금 이 일을 꺼집어내는 이유도 기억하기 위함이묘, 기리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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