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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우리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기는 국민학교 입학하고 나서다.
당시 전봇대는 재료로 볼 때 두 가지였으니 하나는 이런 시멘트 종류고 하나는 시커먼 기름 잔뜩 먹인 낙엽송 종류같은 나무 전봇대였다.
당시엔 엿장수가 동네에 심심찮게 드나들었는데 이 전봇대 발걸이를 빼다가 엿으로 바꿘 먹곤했다.
내 경험으로 가장 많은 엿을 얻은게 동종 하나를 들녘에서 주워서는 엿장수에게 건네받을 때였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동종은 어느 절터에서 밭갈이하다 나온 것이니 지금 보면 매장문화재다.
아까비.
엿이 내 일생을 바꿔놓았다.
(2015.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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