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동사지桐寺址 라는 옛 절터다. 현재는 삼층석탑 두 기가 섰으니, 절터는 사적으로 지정되고 석탑은 각각으로 기억하지만 확실치는 아니하다 보물인 상태다.
석탑 주변을 1980년대 동국대박물관인가에서 찔끔 조사한 적이 있고,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저런 절터는 모름지기 우리가 해야 한다는 신념에 투철한 대한불교조계종단 산하 발굴전담 조직인 불교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거니와
이 절터와 두 석탑은 마침 문재인 정부가 수도권 주거문제를 해결한다 해서 느닷없이 이 일대 전체를 졸라 크게 묶어 교산신도시를 만든다고 공포했으니, 이 주변 일대도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기억하거니와,
그런 까닭에 그에 즈음해 이태전에 이 일대 문화재, 특히 문화재를 어찌할 것인가 라 해서 한국중세사학회인지가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했거니와 소생 또한 발표자에 이름을 걸쳐 그것을 논한 적이 있거니와
그에서 내가 무슨 주옥 같은 말들을 지껄였는지, 나는 내 말이 입끝을 떠나버리면 끝이라 기억할 수도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가지는 이것이다.
교산신도시가 어케되건 말건 동사지를 뭉개 부수어 버릴지언정 결코 그 북쪽 인접 지점에 위치하는 저 춘궁저수지만은 지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거니와, 이 신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이 없다.
일요일인 어제 팔자에도 없는 새 찾아 나선 김에 다시금 현장을 목도했거니와 결코 넓지 않은 저 춘궁저수지는 강태공으로 이어터졌으니, 그야말로 그 연못 가를 따라서는 발디딜 틈조차 없었고 바늘 하나 꽂을 구멍도 없었으니, 이 연못은 그만큼 시민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곳이라 저런 데를 어찌 버린단 말인가?
신도시 굉음에도 저 저수지만큼은 지켜야 한다.
같은 시각 동사지엔 파리가 날렸으니, 저 유적 이름과 같은 이름을 표방한 동사라는 정체불명 사찰이 마당에다 내어 키우는 개새끼 한 마리에다가 보아하니 일요일인데 뭐하냐? 나도 좀 쉬자 하는 잔소리 듣고는 애들 데리고 나온 중년 아버지랑 그가 이끄는 아이 둘만 있을 뿐이었으니
이것이 대한민국 문화재가 처한 처참하면서도 냉혹한 현실이다.
이 업계 몸담은 자들은 걸핏하면 미래를 내다 보고 유적공원을 만들어야 하느니 하는 망언을 펼치지만, 그리하여 춘천 중도에 대해서도 그런 헛소리 일삼지만, 무슨 유적이 그리 대단하다고 청동기시대 고인돌 100기가 레고랜드에 상대가 된단 말인가?
닥치고 레고 블럭 쌓아 돈 벌어야지 어찌 한가롭게 문화재 타령이겠는가?
마찬가지다. 하남 동사지? 누가 알아? 그래? 현장이 장관? 무슨 장관? 돌무지 두 개 덜렁한 그 풍광이 무슨 장관이란 말인가? 그거 둘러볼 요량에 춘궁저수지에 낚싯줄 던져 놓거나 그 인근 카페에서 중년 여성이랑 노닥임이 백배 나으리라.
필요를 주지 못하는 문화재가 무슨 쓸모인가?
코딱지만한 저수지만도 못한 데가 문화재다. 이 처참한 현실을 냉혹히 인식하는 데서 문화재는 살 길을 비로소 찾는다.
왜 절터는 레고랜드가 되지 못하는가? 되지 못하는가? 아님 그리 만들지 아니했는가?
지금과 같은 꼴로 아무리 풀 깎고 왁싱해 놔 봐라 사람이 가는가? 버림받은 문화재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저 동사지는 여러 모로 내 상식을 배반한다. 저 두 석탑은 세트가 아니다. 이질하는 두 석탑이 언제인지 느닷없이 붙었고, 내가 보기엔 둘 다 본래 자리가 아니다.
이제 발굴이 시작됐으니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모르겠지만 고고학이 만능인가? 켁! 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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