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지하 막비왕토라는 말이 있어
세상 땅은 모두 왕의 땅이고
네가 부치는 그 땅은 왕에게 빌려 농사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결국 공전제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것이지만
한국의 경우 딱 이런 공전제가 아니더라도
농사짓는 땅에 비료거리가 될 만한 주기적 범람도 없고
표토도 얇아
몇년만 농사지으면 지력이 다해서 연작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리저리 옮겨가며 농사짓기도 어려운 것이
사방에 사람들 천지라
결국은 가지고 있는 손바닥 만한 땅 일구며 먹고 살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러다 보니 이 땅을 일구어 먹고 살 방법은
결국은 강력한 시비에 기반한 농사 밖에 없었겠다.
필자의 외국 학자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특히 미국.
가장 신기해 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의 농경지로
노는 땅 하나 없이 각종 작물을 (단작이 아니라 여러 종의 다양한 식물을)
마치 식물원처럼 밀식한 데다
심지어는 사람 다니는 밭둑까지 심어 놓은 것을 보고
재미있어 했다.
집약적 농경이라는 게 이름은 폼이 나는데
결국 노는 땅 없이 빽빽히 작물을 밀식하고
그땅에서 매년 산출이 나오도록
비료를 때려 붓는 것밖에는 없으니
어차피 한국의 농부들에게는 처음부터 자기의 농지는 자기땅이라기 보다
땅은 단지 공간일 뿐 실제로는 각종 자원을 투입하지 않으면
도저히 산출을 얻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따지고 보면 바로 이러한 경제적 이유가
한국에서 지주-전호제를 보다 강고히 만드는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필자 생각이지만,
최소한의 수확을 얻기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자본이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높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냥 던져둬서는 농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처절한 집약적 농경이 언제부터 성행했는가 하는 것인데
학계에서 완전히 규명되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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