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예정하지는 않았으되 어찌 하다 보니 그리 되었을 뿐이라 예고했듯이 가뜩한 추석 엿새 연휴에다 한글날 연휴를 꿰매는 장기근속휴가랑 연차휴가 쑤셔박아 한달 장기휴가를 만들어
위선은 고향 김천으로 아버지 산소를 손봐야했으니 어차피 그 휴가 일주일은 김천에 칩거할 요량이었거니와 마침 주말엔 함안문화재야행 실사건이 있어 이를 징검다리 삼아 가차운 데를 오가다가 함안으로 오가는 길목에 이런저런 데를 쏘다녔으니
예정한 수순이기는 했지만 마침 일곱 군데를 엮은 가야고분군이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사우디 리야드 회의에서 국내 열여섯 번째 세계유산이 된 일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하나씩 손댄 김에 그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관련 신규 유산 몇 군데도 훑었으니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익숙한 데이고 해서 이렇다 할 감흥은 없었지만 마침 비가 내리는 날이라 이런 날은 연무가 피기 마련이므로 연무 머금은 무덤 담자 해서 느닷없이 김천에서 날았으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
비가 오는 것까진 좋았는데 디립다 퍼부어대는 바람에 쌩고생만 했다. 어떤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을 지는 모르겠다. 다운로드를 안 했으니 말이다.
들른 김에 이곳 터줏대감 정동락 대가야박물관장께는 문안인사 드리지 않을 수 없어 커피 한 잔 얻어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간만에 회포를 풀었고 또 다른 이곳 터줏 마고 할미 손정미 선생이랑은 잠깐 인사만 나누고 말아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이튿날은 구미로 날았다.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애초 예정한 두 곳 중 새마을기념관인가 박정희기념관은 포기하고 성리학기념관을 갔다.
이 신생 성리학박물관은 내가 간다간다 빈 약속만 남발하고 실행치 못해 늘 미안하게 남았으니 그 약속 늦게나마 풀게 되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역시 간 김에 박은진 선생 뵙지 않을 수 없었으니 꼭 연락 닿으면 그 부군 전서방이 끼는지라 이번에도 어김이 없어 부부의 환대를 받았으니 언제나 그걸 제대로 갚으려나 모르겠다.
다시 본가로 복귀하고선 이튿날 마침내 짐을 싸고는 엄마께 하직인사하고는 함안으로 날았다.
부러 거창을 거치는 코스를 밟았으니 이곳엔 터줏대감 구본용 관장이 거창박물관에 암약하는데 이 분 가깝다는 이유로 가끔씩 엄마한테 불쑥 들려 선물을 놓고 가곤 하는데
이제 정년이 코앞이라, 언제 다시 현직에 있을 때 뵐 수 있을까 싶어 그간 감사의 말씀도 새삼 전할 겸 안부 인사 나눌 요량으로 들렀으니 하도 대면은 오랜만이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또 나는 생각지도 못한 옛 자생병원인지를 개조한 등록문화재 현장도 소개받을 수 있었음은 축복이었다고 말해둔다.
거창은 둔마리 고분벽화 본향이라 몇번 근처를 지나치긴 했지만 차일피일하다 이러다 영영 못 보고 죽는게 아닌가 싶어 굳이 욕심내어 현장을 찾았으니 그 과정이 좀 고되기는 했지만 찾아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느낀 바가 좀 있고 그 응어리가 신기하게 다른 데서 풀리는 부대효과도 있었으니 이래서 현장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음 타깃이 합천이라 이곳에는 가야유산 일부인 옥전고분군이 있어 이곳은 어찌된 셈인지 나랑 인연이 없었으니 이참에 그 무연을 어케든 박살내고 싶었다.
거창을 떠나 합천으로 가는 길에 의령을 통과하는데 이 의령 역시 인연이 없어 미답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의성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고향이라 그 유산이 곳곳에 남은 흔적을 그의 이름을 딴 도로에서 여실히 보았다. 그의 생가라도 봤음 싶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가야고분군은 거개 다 공립박물관과 세트라 옥전고분군 역시 합천박물관이 그 구역에 있다. 두 군데를 동시 타격하며 이런저런 편린이 스쳐갔다.
함안으로 달려 닿으니 해가 뉘엿뉘엿 낙조 담겠다며 서둘러 오르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라 또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는 통에 애초 기대한 장면은 만나지 못했다.
함안문화재야행 올해 행사는 낙화놀이로 유명한 무진정 한 군데만 선택한 점이 나로선 다행이었다. 어떤 프로그램을 담아 어찌 진학ㅇ하는지를 보았고 특히 지역사회와 얼마나 혼연일체가 되어 하는지는 내 평가보고서에 담길 것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다만 하나 함안군의 문화재를 향한 열정은 놀랍도록 눈이 부신데 밤늦도록 그들과 대화하며 나태해진 나를 경계하는 작은 기회로 삼았다고 이야기해둔다.
모텔을 잡고 잠을 청하다 어떤 일로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전전반측하다 새벽에야 계우 눈을 붙였다가 다시 눈을 떴는데 여섯시가 되지 아니한 천지사방이 온통 연무라 지산동 고분에서 포기한 무덤 연무를 함안이 턱 하니 선물하는 것 아닌가?
곧장 말이산고분군으로 내달아 그 아랫목 함안박물관에 주차하고는 천근만근한 몸뚱아리 이끌고는 언덕을 오르니 그런대로 묘지 분위기는 나더라.
간단히 요기하고는 박물관 문 열기를 기다려 이곳저곳 둘러보고 또 그곳 학예사 선생 접선해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는 박물관 앞 정자에서 그대로 뻗어버렸다.
주섬주섬 정신차리고선 대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창녕을 쳤다.
잠깐 이 블로그에 설을 풀었듯이 비봉리 유적 현장을 확인코자 함이었으니 남들이 뭐랄지 모르겠지만 이 유적은 김태식 유적이다.
그만큼 나로서는 젊은날 한 때 열정을 불사른 곳인 까닭이다.
하지만 기대대로 현장은 절망 그 자체였다.
한때는 실로 뻔질나게 들락거린 교동고분군을 갔다. 이곳 역시 이번 가야유산 일곱 군데 중 하나라 그때랑 지금이랑은 격세지감이라 너무 깔끔히 단장해서 외려 징그런 느낌도 없진 않았다.
온 김에 진흥왕 알현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이른바 창녕척경비 배알하니 한때 젊은날 그 마멸한 글씨 하나 더 읽겠다고 혹 야밤중 후레시로 비쳐보면 안 읽히는 글자 하나라도 더 나올까 싶어 칠흑 같은 밤 모텔방 랜턴 꺼내 들고는 요리조리 비쳐보던 그때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
그때 그 랜턴 습격사건에 마지 못해 동행한 이가 이미 죽고 없는 경남대 이상길이다.
그때는 그랬다. 다 그랬다. 나도 그랬고 너도 그랬으며 그들도 그랬다.
혈기방장 오직 하나로 하루하루 전투하며 살았다.
그런 날을 꺼집어내어 과거의 김태식 하나의 증언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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