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 넘기기 쉬운 데 예컨대 삼국시대 백제 유물이라 해서 골동시장에 유통하는 물건 중에 개개 부품을 살피면 다 진짜인데 전체로 보면 영 이상한 조합이라 전체 가짜로 판정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예컨대 토기 중에 명백히 주둥이는 백제 계통인데 몸뚱아리는 명백히 신라 계통인 것이 있다. 깨져나간 주둥이를 교묘하게 그에 들어맞는 것이라 해서 백제토기에서 떠다 붙인 것이다.
이런 삼국시대 유물은 없으므로 개별 부품은 진짜지만 가짜 판정을 하게 된다
이번에 일괄로 가야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곱 곳 중 창녕 중심 비화가야 유산이라 해서 그에 포함된 창녕 교동 고분군 풍경이다.
무엇을 덮어씌운 무덤 하나가 보이는데 그 자세한 모습들을 여러 각도에서 보면 아래와 같다.
이걸 보면 언뜻 현장 무덤을 발굴하고서 무덤 내부를 보여준다고 저와 같이 만들어놨다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거 아주 기묘하고, 어쩌면 교활하기까지 하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이를 위해 위선 그 안내판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
저걸 풀어쓴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 교동 II지구 67호분
Ancient Tombs in Gyo-dong and Songhyeon-dong - Gyo-dong Zone II- Tomb No.67
교동 II지구 67호분은 교동 II지구 서쪽 무덤들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무덤이다. 그동안 봉분이 없어 무덤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가 2009년 주변을 정비하는 발굴 조사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났다.
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橫口式石室墓]*이며, 돌방은 벽의 일부가 주택에 의해 훼손되었지만 거의 도굴되지 않아 만들어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였다.
돌방은 길이 6.5m, 너비 1.4m, 높이 1.7m이며 뚜껑돌은 9매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돌방은 5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주검과 유물, 순장자殉葬者**를 안치하였으며 순장자는 주검의 발치 쪽에서 확인되었다.
은제허리띠銀製銙帶, 장식말갖춤裝飾馬具 등의 장신구와 토기류, 무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유물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출토 위치가 달라 비화가야 장례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돌로 세 벽을 쌓고 천장돌을 덮어 무덤방을 만든 다음, 한쪽으로 시신을 넣고 무덤 입구를 막아 추가 합장이 가능하도록 만든 무덤 양식.
** 한 집단의 지배충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강제로 또는 자진하여 산 채로 합께 묻헌 사람.
This tomb is a stone chamber tomb with horizontal entrance built in the late 5th century.
This tomb has no remaining burial mound so it remained undiscovered until 2009 when nearby excavations revealed its existence.
Some of the stones that formed the walls of the burial chamber were taken to be used in the construction of nearby setlements, but the tomb itself was not looted and was found preserved in its original form.
The chamber measures 6.5 m in length, 1.4 m in width, and 1.7 m in depth, and it is presumed to have been covered by nine capstones.
The chamber was divided into fve sections, with the tomb Owner and burial; goods buried inside.
At t the feet of the tomb owner were the remains of human sacrifices.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tomb include adornments such as a silver waist belt: and decorated horse-riding accesso ries as well as pottery and weapons.
Burial goods were placed in different sections of the chamber according to their purpose, which makes this tomb a valuable source of information on the funeral culture of Bihwa Gaya.
저 문구를 보면
그동안 봉분이 없어 무덤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가 2009년 주변을 정비하는 발굴 조사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났다.
라 했으니 저 반토막 난 봉분은 짜가다. 간단히 말해 다 없어진 것을 발굴조사를 완료하고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라 상상해서 쌓아올린 것이다.
이런 사실은 안내판을 꼼꼼히 읽어야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정확히 그리고 명확히 한 구절이 없어 이곳을 관람하는 사람 대부분은 진짜 무덤이구나 하고 지나치게 된다.
한데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의문이 또 있다.
저 단면이라 해서 각종 흰줄을 그어놓은 건 어쩐지 진짜 같다.
도대체 어찐 된 셈인가?
저 의문이 저 안내판으로는 도대체 해명되지 않아 그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을까 해서 찾았더니 그 단면 어느 한 쪽 아래서 다음 장면을 희미하게 포착한다.
이제는 페인트까지 다 벗겨져가는 저 문구는 이렇다.
교동 1지구- 7호분
봉토 토층단면 재현
이제 의문이 비로소 풀렸다. 저 단면은 진짜 비화가야 무덤의 그것이다.
간단하다. 이곳에 속한 다른 무덤을 발굴하면서 봉본을 절반으로 동강내고선 그 단면을 떠서 여기다가 갖다 붙인 것이다.
이런 보존처리 방식을 전사傳寫라 한다.
우리 문화재 현장에선 이 전사방식이 여전히 선호되지만 저건 도스시대 유산이라 저것도 유적을 훼손한다 해서 요새는 3d 촬영 같은 기법 동원해서 인화한 종이를 붙인다.
아무튼 진정성 측면에서 저 현장은 문제가 한둘이 아니거니와 자칫하면 눈속임이라는 비난을 사기 딱 좋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적한 문제들을 명확히 안내문에 적시해 주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왜 저런 일이 생겼을까?
이 역시 간단한데 돌대가리 같은 자문위원이니 문화작위원들 생각을 더 돌대가리들인 문화재청이 받아들여서지 딴 이유 없다.
기왕 속내 본다 파제낀 무덤 보여줄 거 같음 진짜배기를 보여주어야지 짐짓 유적 보호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저딴 눈가리고 아웅 정책이 횡행한다.
까서 보여줄 거 같으면 제대로 보여주라!
***
조사 결과 드러난 무덤방은 규모가 길이 6.5m, 너비 1.4m, 높이 1.7m이라는데 이것도 이상하다. 눈대중이나 너비는 대략 맞춘 듯한데 높이는 눈대중으로 봐도 절반은 줄여놨고 길이도 많이 준 듯해서 부조화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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