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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마운령磨雲嶺, 문명과 야만의 경계

by taeshik.kim 202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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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북한 영토를 배경으로 하는 관심이 환장을 유발하는 이유는 내가 현장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운령


마운령磨雲嶺.

이 마운령에 대한 확실한 증언은 조선시대 접어들어 각종 문집에 전하기 시작한다. 이들을 분석하면 마운령은 하나 같이 관문이다.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관문으로서의 마운령이다. 이 마운령을 경계로 삼아 문명과 야만이 갈리는 흔적이 뚜렷하다.


마운령


몇번 말했듯이 나는 남북이 통일하는 날, 맨먼처 차를 몰아 마운령과 황초령에 오를 것이다. 그리하여 왜 하고 많은 곳들 중에 이곳을 진흥왕이 올라 순수비를 세웠는지를 물어볼 것이다.

각설하고, 구글어스로 왜 마운령인가를 찾아보곤 한다.
왜 마운령인가?

우리는 동해안 변이라고 하면 막연히 해안선 따라 북상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명사십리가 대표하는 해변길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마운령



하지만 동해안은 그런 상식을 무너뜨린다. 길이 막힌다.
남한에서 대표적인 곳이 울진 근방이다. 한데 마운령 근방 동해안을 보니, 국도 혹은 도로 지나는 꼴을 보니, 이곳 역시 울진과 다름이 없어 실은 교통의 격절지라는 사실을 유감없이 확인한다.

해변을 통해 이 지점은 통과할 수가 없다.

왜 마운령인가?

(2017. 12. 3)

 

***

 

고려시대는 확실한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지만, 조선시대 내내 이 마운령이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경계선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같은 조선이라고 해도, 마운령 밖은 야만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경계선이 신라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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