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모두가 돈에 환장한 백년전 황금광狂 시대

by Herodopedia taeshik.kim 2020. 12. 1.
반응형


옛 동아일보 사옥을 차지한 같은 동아일보 계열 일민미술관에 걸린 플랭카드를 주로 출근길에 지나치거니와, 아직 전시장을 실견하진 못했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대략 감이 잡힌다.

저 전시가 겨냥한 1920년대는 바로 동아일보 탄생기점을 포함하거니와 올해가 창간 백주년이라 세종로 맞은편 조선일보랑 나이가 같다.

코로나팬데믹에, 그리고 저 두 신문을 향한 우리 사회 일각의 시선이 녹록치 아니해 그런 기념이 그것이 누려야할 자리매김 비중에 견주어 퇴색한 감이 있지만 그리도 저 두 신문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저 두 신문 없이는 근현대사를 쓰지 못한다는 사실은 너무 잘안다.

없어져야 할 적폐라면서도 주구장창 한국근현대사는 저 두 신문에 기대는 역설이 빚어진다.

각설하고 저 전시가 겨냥하는 황금에 환장한 시대는 말할 것도 없이 물경 15년 전 어느 국문학도 노작을 바탕 삼거니와, 지날 적마다 내가 매양 피식피식 웃는 까닭이 그것이다.

2005년 내가 작성한 기사를 음미하며 백년전 식민지 조선에 몰아친 황금광품을 반추한다. 지금 읽어보니 명문이다. ㅋㅋ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 몰아친 황금열풍
입력 2005.01.26. 05:38 수정 2005.01.26. 05:38
국문학도 전봉관 교수, '황금광 시대' 펴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팔봉 김기림(1903-1985). 토월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 핵심을 맡은 사회주의 문학운동가로서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도 일했다.

팔봉은 1933년, 금광재벌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자 과감히 기자직을 박차고 나왔다. 그 이유는 '금전꾼' 밑에서 일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금전꾼이 싫다며 뛰쳐나온 그가 달려간 곳은 어디였을까? 방응모가 부를 축적하는 원천이 되었던 금광이었다. 광맥을 찾아 돈을 벌어 신문사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품은 그의 열망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1930년대에 김기림 만큼이나 황금에 미쳤던 문학가로는 채만식이 있다. 채만식의 금광사업 동업자는 설의식. 설의식이 누구인가?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사퇴한 바로 그 설의식이다.

김유정 또한 이들 못지 않은 황금광이었음은 그의 기념비적 단편소설 제목이 당장 '금 따는 콩밭'이라는 사실에서 직감할 수 있다.

1930년 11월에 발간된 잡지 '별건곤'에 실린 삽화는 신식 여성의 핸드백에 청진기를 댄 의사를 형상화하고 있다.

여자가 묻는다. "선생님 무슨 병일까요?". 의사가 대답한다. "유행성 불경기 균(菌)이 작용하는 황금부족증 히스테리올시다."

최영수라는 사람이 1936년 7월에 발간된 '사해공론'에 기고한 글에는 황금병 풍조를 "운모(雲母)만 번쩍여도 금이다 은이다 하여 분석을 하느니 광무소(鑛務所)를 찾아가느니 밤잠을 못 자느니 일확천금에 눈이 뒤집혀서"라고 묘사하고 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은 바야흐로 '황금광(黃金狂)의 시대'였다. 의사건 변호사건, 독립운동가건, 사회주의 운동가건, 신문기자건 시골촌부건 가릴 것 없이 온통 황금 열풍으로 홍역을 앓았다.

이런 열풍 현상을 작금 국사학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왜? 그들에게 각인된 식민지 조선은 늘 헐벗고 굶주리며, 늘 일제의 압박에 시달려야 하며, 거의 모든 식량은 수확과 함께 곧바로 수탈당해야만 하는 시대가 바로 식민지 치하이기 때문이다.

저항과 친일, 이처럼 단순하기 짝이 없는 도식적인 한국근현대사의 설정이 정작 식민지 조선에서 살았던 2천만 조선인의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내몰고 말았다.

1971년생, 이제 만 34살이 된 '풋내기'국문학도 전봉관.

'1930년대 도시적 서정시 연구'로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저항과 반항, 순종과 친일" 아니면 국사학이 거들떠도 보지 않던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세계를 `황금광 열풍"과 문학을 고리로 파고 들었다.

전봉관은 문학도라는 특장을 유감없이 살려 1930년대 출판물과 문학작품을 장식하고 있는 식민지 조선의 황금 열풍을 단행본 '황금광 시대'(살림)로 정리해 냈다.

여기서 정작 궁금한 점. 하필 왜 식민지 조선에 황금 열풍이 1930년대에 열병처럼 불었을까? 그 비밀은 1929년에 시작된 세계경제 대공황과 그 여파로 세계 각국이 실시한 금본위제 정지에 있었다.

금본위제가 정지됨에 따라 금 보유국은 금의 해외유출을 금지했다. 금을 구하지 못한 일본은 국내에서 금을 찾아내 캐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조선은 현재의 우리에게는 피식민지이지만, 일본 '국내'였으므로 이 땅에 살던 많은 조선인이 너도 나도 곡괭이 들고 논을 파헤쳐 금을 캐러 나섰던 것이다. 332쪽. 1만2천원.
taeshik@yna.co.kr


반응형

댓글0